교황님의 묵상

동방교회의 부활축일

MonteLuca12 2020. 4. 20. 10:15

그나마 독수리 타자수는 아니다. 그래도 키보드에서 눈을 떼는 실력은 못된다. 새벽의 어스름을 깨고 싶지 않아 자판만 간신히 비추는 전등을 사용한다. 키에 새겨진 글씨가 어렴풋이 보일 때면 조금 서둘러 그 전등을 끈다. 그 놈이 켜져 있는 시간이, 늘고 주는 것을 재면서 세월이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큰 달이 새벽을 비추는 경우는 없다. 있더라도 뒤편 베란다 쪽에만 자리를 잡는다. 내가 그 시간에 만나는 달은 하현달이거나 그믐달이다. 약간 남으로 치우친 동쪽 하늘에 야트막하게 걸린 달과 인사를 나누며 시작하는 날은 왠지 기분이 좋다.

 

시간과 날짜를 정한 지성의 지배를 받고 산다. 하느님이 정하신 것을 인간이 찾아낸 것이리라. 해를 따라 사는데 길들여진 몸과는 달리, 마음은 달 쪽으로 기운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으로부터 우리 집 턱밑 모래불까지, 길고도 넓은 길을 만들어주던 달은, 해님보다 훨씬 컸다. 애달프고 구슬픈 마음도, 희망에 부푼 가슴도 거기에 옮겨놓았다. 달은 내 아름다운 기억의 귀한 저장소다.

 

전례력의 두 축 중 하나인 예수님의 부활은 달의 시간을 따른다. 같은 ‘파스카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사용하는 달력의 차이에 따라 동방교회는 일주일 뒤에 부활을 축하한다. 찼다가 기울고, 늘었다가 줄어드는 달은 따스한 정감을 품고 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치가 어찌 획일 같은 것일까?

 

주님의 자비 주일에 부활삼종기도를 바치는 교황

동방교회의 부활축일
 
‘라틴전례’를 따르는 가톨릭교회는 어제(한국시간)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지냈다. 교황은 이날, 한 주 늦게 부활축일을 지내는 동방가톨릭과 정교회에 축하 인사와 축복을 전했다.
 
교황은 로마시내 작센지구에 있는 성령성당에서 ‘하느님의 자비 주일’ 미사를 집전한 후 부활삼종기도를 바쳤다. 부활시기 중에 바치는 이 전통적인 삼종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교황의 훈화가 있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이 성당을 하느님 자비의 성지로 지정하셨습니다. 선대 교황님께서 이 축일을 제정하신지 20년이 되는 날, 이 곳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인생과 역사 속에서 불어 닥치는 폭풍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자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비는 우리가 나누는  사랑에 담긴 동정심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연민입니다. 특히 고통을 겪는 이들, 남들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과 소외된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단순한 도움이 아니다
 
“자비는 경건주의자들의 표정과 같은 것이 아니고, 형식적인 원조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동정심(com-passion)입니다. 함께(com), 열정(passion)을 나누는 것입니다. 즉 마음에서 우러나와 기꺼이 베푸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성심에서 나옵니다. 언제나 열려있는 그분 옆구리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찔리신 상처를 우리를 위하여 언제나 열어놓고 계십니다. 그 자비는 늘 우리가 필요로 하는 용서와 위로를 싣고 옵니다.”
 
“온 세상이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의 공포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국가는 자국 국민들이 연대의 정신으로 마음을 모으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비에서 얻는 영감을 통해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동방교회의 부활축일
 
동방가톨릭과 정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오늘(4월 19일) 부활축일을 지낸다. 교황은 “동방교회에 속한 우리의 형제자매들”이라는 표현을 써서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이 엄청난 시련의 시기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가져다주신 큰 선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일어서리라는 희망입니다.”

[광고 게재에 관해 양해를 구하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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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Vatican News, 19 April 2020, 11:54,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20-04/pope-francis-regina-coeli-oriental-easter-wishe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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