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어둠을 밝히는 빛

MonteLuca12 2020. 4. 23. 13:16

정겨운 이름들이다. 옛 어른들의 감성이 묻어난다. 내가 자란 곳에만 있는 줄 알았던 지명이 온갖 동네에 다 붙어있는 것에 적이 놀랐다. 보는 눈이 같고, 느끼는 감정이 공간을 뛰어넘어 통하고 있다. 그곳에 싸리나무가 많았었는지 알지 못한다. 주일이면 신부님의 지프에 올라앉아 공소미사 복사를 하러 다니면서, 구교우촌으로 통하는 그길 이름이 ‘싸리재’라는 것을 알았다.

 

‘노루목’과 ‘새목’. 대학에 올라가 방학이면 파견되었던, 첩첩산중 공소 마을마다 있었던 이름이다. 서로 다른 회전반경의 차이 때문일까? 구릉의 높낮이를 구분하여 붙여준 이름일까? 아니면 노루가 다니는 길목과, 새들이 둥지 트는 어귀라는 것을 알고 지어준 명칭일까?

 

오늘 새벽 산책길에서도 딱따구리의 아침 인사를 들었다. 나는 그 아이를 안다. 머릿속에 고정된 관념과는 달리, 작은 새라는 것을 몇 년 전에 알았다. 내가 아무리 두드려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딱딱한 나무가 그렇게 큰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만사가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여 되는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작은 새와 무뚝뚝한 나무가 일으키는 우아한 공명이 아침을 깨운다. 그 위로 세상을 비추는 빛이 솟아오른다.

 

지난 주일 처음 소개했던 바티칸 박물관 관람(21번)에 이어 23번째 그림을 올린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예술” (ART THAT COMFORTS)이라는 섹션의 이름 밑에 바티칸의 예술품들이 한통으로 추가되고 있다. 바티칸 뉴스나 이 블로그가 이용하는 플랫폼의 환경적 제약으로 인해, 예술품을 감상하기에는 부족하나 걸작의 존재를 아는 것으로 만족하자. 그보다 교황님들의 고귀한 말씀을 듣고 새기는 재미가 작지 않다. 그 말씀을 옮기는 손이 늘 떨린다.

 

라파엘로, 성 베드로 해방, 바티칸 궁의 엘리오두르스의 방 , 부분(디테일), © Musei Vaticani

 

 

오늘 이 세상 모든 이들이 빛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찾을 수 없는 빛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

요한복음이 선포하는 그 생명의 빛입니다.

그 빛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지혜와 용기, 그리고 기쁨입니다.

 

Deo gratias!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당신께서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어두움에 싸인 인간 세상에 빛을 밝혀주셨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 우르비 엣 오르비 메시지, 1964년 3월 29일)

 

 

출처: Vatican News,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vatican-city/news/2020-03/vatican-museum-beauty-art-spirituality-comfort-faith-pop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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