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그것은 「성로신공」이었습니다.
제4처에 걸린 상본 속 성모님의 표정이 생생합니다. 열심히 상본을 보는 것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열심히 하는 방법이라 믿었습니다.
어제 저녁에 만난 우리 성당 제4처의 ‘작품’은 옛날 그것과 사뭇 달랐습니다.
“괴로운 십자가의 길에서 서로 만나시며 사무치는 아픔을 겪으셨으니"
마음이 와 닿는 것은 나이 들어 느끼는 기도문의 내용뿐....
이 기사는 3월 13일 Vatican News 한글판에 실린 것으로 김호열 신부님의 번역문 (저자: Sergio Centofanti)임을 밝힙니다.
6. 진정한 신앙은 우리를 위기에 처하게 합니다
교황은 우리 그리스도교를 많은 위기로 몰아넣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교황은 예수님 시대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 같은, 소위 (하느님과) 가까운 이웃이라는 사람들을 자극했으며, 소위 먼 사람들을 위해 다리를 놓았다. 그는 종종 강력하고 다채로운 언어적 표현을 통해,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만 했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바로잡으면서 교황의 말을 겸손하게 받아 들일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상처받은 노여움으로 (교황을) 배척할 수 있다. 교황은 “우리를 위기에 처하지 못하게 하는 신앙은 위기에 처해 있는 신앙이며, 우리를 자라게 하지 못하는 신앙은 자라나야 하는 신앙이며,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는 신앙은 우리가 제기하는 의문을 받아야 하는 신앙이며, 우리에게 활력을 주지 못하는 신앙은 활력을 받아야 하는 신앙이며, 우리를 전복시키지 못하는 신앙은 전복돼야 하는 신앙”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인간이 되시고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전복시키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으시기 때문이다. 바리사이들은 신앙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면서 신앙을 물건처럼 소유하고 이용했으며 심지어 하느님까지 속이려고 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길이 아닌 당신의 길을 따르라고 부르신다. 때때로 교황이 사용하는 표현들이 우리 마음에 들지 않고 너무 강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우리 자신들의 신앙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 왜냐하면 스스로 (하느님과) 가까운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위선의 위험에 쉽게 떨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7. 모든 것 위에 있는 사랑
교황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사랑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내어주면서까지 이 세상에 신앙의 위대한 진리들을 선포할 수 있으며 기적을 행하고 악령을 쫓아낼 수 있지만,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교황은 우리 삶의 마지막 순간에 아주 구체적인 무엇인가에 의해 심판 받게 된다는 것을 지치지 않고 상기시켰다. 교황은 마태오 복음 25장을 자주 인용한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 일반알현 때마다 가난한 이들과 이민자들을 우선적으로 포옹하려고 하고, 모든 종류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는 교황을 향해 (어떤) 사람들은 종종 이해하지 못하거나 (교황이) 초월적인 측면보다는 사회적 측면만을 앞세운다고 비난하곤 했다. 사실 교황의 이러한 행보는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교황의 이러한 호소는 근본적으로 영적이며 종말론적인 뿌리를 갖고 있다. 교황은 최후의 심판을 생각한다. 곧, 우리 삶이 저물 때, 우리를 심판하는 것은 이 생애 동안 실천했던 구체적인 사랑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만약 가난한 이의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그리스도를 대면하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출처: Vatican News 한글판, Sergio Centofanti / 번역 김호열 신부, 2019년 3월 13일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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