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 26일은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었다. 그리고 한국천주교회 236년 역사 상 처음으로 미사가 전면적으로 중단된 날이기도 하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은 ‘전례시기’를 한 바퀴 돌아 또다시 사순시기의 문턱에 다가서고 있다.
교황청은 로마시간으로 12일, ‘재의 수요일’ 예식에 관한 지침을 발표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취해진 특별한 조처이지만, 그 내용이 그리 낯설지 않다. 영성체 예식이 몸에 밴 우리에겐 이 발표가 오히려 자연스럽다. 먼저 「Vatican News」에 게재된 기사를 옮겨서 붙인다.
‘재의 수요일 예식’에 관한 공지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예식과 관련하여 전 세계의 사제들이 따라야할 절차를 설명하는 ‘공지(note)’를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건강보건 상황이 모든 이들의 일상생활에 지속적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 변화는 교회의 영역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재의 수요일인 2월 17일을 앞두고,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공지’를 통하여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사제들에게 ‘재의 예식’ 거행에 관한 자세한 지침을 전달한다.
지침의 내용
사제는 재에 강복해 주시도록 간구하는 기도를 바치고 난 후에, 말없이 재에 성수를 뿌린다. 그러고 나서 신자들을 향해 「로마 미사예식서」(Roman Missal)에 있는 다음 양식의 말을 전한다.
†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십시오.” 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사제는 손을 깨끗이 씻고, 마스크를 쓴 후 사제 앞으로 나오는 이들에게 재를 나누어 준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이 서있는 자리로 가서 재를 나누어 준다.
사제는 말없이 각 사람의 머리에 재를 뿌린다.
생소한 점이 눈에 띈다. 머리에 재를 뿌리는(sprinkle) 것과, 재를 나누어주는(distribute) 절차가 설명되어 있다. 이 둘이 다른 것인가? 혹시 ‘비정규 성체분배자’㈜와 같은 직무가 이 예식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재의 예식’에 참례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성수처럼 담아 보내는 관행을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것인가?
[역자 주] ‘비정규 성체분배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체분배자’의 공식적인 용어이다. 「성체분배자에 관한 규정」은 교회법 제910조 2항, 제230조 3항에 근거하여 ‘성체분배자’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비정규 성체분배자는 시종자와 성체분배권을 받은 평신도이다.”
과민이 불러온 궁금증에 떠밀려 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시도에 착수했다. 권위 있고 공식적인 답을 얻으려고 진지하게 노력한 것은 아니다. 혹시 미국엔 그런 사례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교포사목 경험이 있는 신부님과 짧은 통화를 했고, 전례학자 신부님과 가벼운 문자 메시지를 나눈 것이 투자한 수고의 전부다. 성체분배 같은 것이 아닐 거란 의견에 ‘재의 예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말씀선물이 붙어왔다. “재를 받으며 인간 존재의 의미를 새기고 회개해야 할 사람이 (단순히) 재를 (보관하기 위하여) 받아 가지고 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손을 놓기가 아쉬워 유치한 방법으로 인터넷을 뒤졌다. 검색어는 “재의 수요일에 축성된 재를 집에 가져가는 사람도 있나요?”라는 뜻을 영어로 바꾼 다소 긴 문장이었다. 뜻밖에도 내가 바라던 질의응답을 어렵지 않게 찾았다.
호주 시드니에서 발간되는 영어 신문, 「The Catholic Weekly」의 인터넷판에 답이 실려 있었다. 52년째 호주에서 사목하시는 미국태생, 존 플레더(John Flader) 신부님의 답변에서 친절과 성의가 느껴진다. 신부님은 시드니 가톨릭 성인 교육센터를 맡아 운영하신 분으로, 간단히 소개된 프로필로 보아 금경축을 넘긴 은퇴사제로 짐작된다. 요약한 답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평신도가 사제를 도와 재를 뿌리는 예식에 참여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로마 미사예식서」에는 이와 관련된 언급이 없습니다. 「축복 예식」(Book of Blessings)에는 미사 없이 거행되는 ‘재의 예식’ 양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예식서에 따르면 ‘재의 예식’은 사제나 부제가 거행하며, 평신도는 성직자를 도와 재를 나누어줄(distribution) 수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재의 축복은 사제와 부제에게만 주어진 권한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중략]
“일반적으로 재의 수요일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첫영성체를 받지 않은 어린이들을 포함하여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재를 얹어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재를 머리에 얹어주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으므로 전례를 돕는 봉사자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제나 부제가 이미 축성해 놓은 재를 평신도가 운반하여 머리에 얹어주는 예식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재의 수요일’ 미사에 참례할 수 없는 환자나, 그와 유사한 처지에 있는 신자들에게 축성된 재를 가져가 얹어주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미사에 참례했지만 제대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신자들에게 재를 얹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략]
의문이 해소되었지만 권위를 가진 해석이 아니라는 점은 모두가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머리에 재를 뿌리는(sprinkle) 것과, 재를 나누어주는(distribute) 것에 대한 구분도 나름대로 결론을 얻었다. 교황청의 ‘공지’에 사용된 두 단어 사이의 자구적 의미 차이를 굳이 찾아낼 필요가 없었는데, 지나치게 집착했던 것이 부끄럽다. ‘성체분배’와 ‘성체를 영해주다’의 경우처럼 가벼운 차이로 해석하고 나니 편안하다.
그래도 아주 쓸데없는 짓은 아니었다. 하루를 소모한 것이 아깝지 않다. 우문(愚問)이 현답(賢答)을 이끌어내는 법이다.
출처: Vatican News, 12 January 2021, 15:42, 번역 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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