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여성의 독서직과 시종직

MonteLuca12 2021. 1. 13. 16:33

갑자가 울리는 종소리가 견딜 수 없이 몰려오던 졸음을 순식간에 밀어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성당을 찾기도 어려웠지만 간신히 주일 마지막 미사에 참례하게 된 것을 퍽 다행으로 여기며 안도했던 순간이 조금 전 지나갔다. 시차의 영향이 극에 달하는 시간인데다가 알아들을 수 없는 강론 때문에 악착같이 버티던 마지막 체면마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당황한 시선이 사방을 관찰하고 나서야 긴 강론이 끝난 걸 눈치 챘다.

 

습도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에 한껏 달궈져 신자들로 가득 찬 성당 안에 유입되고 있었다. 그 후텁지근한 김을 식혀줄 아무런 장치도 없는 공간속에서, 긴 수단에 중백의를 입고 제대 위를 오르내리는 일이 어린 소년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다.

 

제대와 신자석을 구분 짓도록 길게 연결된 장궤틀은 신자들이 나와 무릎을 꿇고 영성체하는 옛 성당의 시설이었다. 거기에 둘러쳐져 있던 흰 보는 마룻바닥에 앉아 강론을 듣던 신자들의 시선을 막아주는 방패막이가 되었다. 독경대에서 신자들을 바라보고 계시는 신부님과는 등을 지고 있는 이 시간, 잠깐 눈을 붙이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를 우리는 그날도 즐기고 있었다. 침만 흘리면 괜찮았을 것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내 복사 친구의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난다.

 

강론이 길어질 것을 염려하여 시간이 되면 종을 치라 일러주신 신부님의 배려가 퍽 재미있다. 좀처럼 보기 힘든 동양인에게 말을 걸어온 분은 내 뒤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였다. 종소리의 의문도 기대 이상으로 친절하게 안내해주신 그 노인 덕에 풀렸다. 우린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여자 애들이 복사하는 모습이 예쁘다는 생각을 늘 한다. 여성 성체분배 봉사자는 만나기 어렵지만, 말씀전례봉사자는 여성들이 수적으로 우세하다. 이제야 그런 봉사직무가 제도화되었다니 그게 오히려 신기하다. 봉사자는 많으나 봉사할 기회가 없는 것이 걱정이다.

 

교황청 '산타 마리아의 집에서 봉헌되는 미사

여성에게 개방된 독서직, 시종직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법을 개정하여 평신도 여성에 대한 말씀전례와 성찬전례 봉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실제적으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이 법제화된 것이다. 교황은 신앙교리성 장관 라다리아(Ladaria) 추기경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로마시간 기준 월요일) 교황의 자의교서 (Motu proprio)가 발표되었고, 발표와 동시에 즉각적으로 독서직, 시종직이 여성에게 개방되었다. 교황권을 통해 이 직무가 안정적이고 제도적인 형태로 확립된 것이다.

 
전례가 거행될 때 여성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거나 성찬전례의 봉사, 또는 성체분배의 직무수행과 관련해 새로운 것이 추가되지는 않았다. 이는 이미 전 세계의 많은 지역교회에서 주교들이 승인하여 관행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관행은 정확하고 적합한 제도적 권한이 정한 바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1972년, 교황 성 바오로 6세는 ‘소품(小品)’(minor orders)을 폐지하고 직(職)으로 바꾼 바 있다. ㈜1 그 이후에도 이 직무가 남자들에게만 허용된 이유는 독서직과 시종직 둘 다 성품성사(holy orders)를 받기 위한 준비단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역자 주1] 예전에는 사제가 되기 위해서 7단계의 품(品)을 받아야 했으므로 이 모두를 성품(聖品)이라고 했고, 신품 성사를 칠품 성사라고도 했다. 1품은 수문품(守門品), 2품은 강경품(講經品, 현재의 독서직), 3품은 구마품(驅魔品), 4품은 시종품(侍從品, 현재의 시종직), 5품은 차부제품(次副祭品), 6품은 부제품(副祭品), 7품은 사제품(司祭品)이다. 여기서 1품에서 4품까지는 소품(小品)이라하고 5품에서 7품까지를 대품(大品)이라고 해서 1품을 받는 순간부터 성직자로서 인정받았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1972년의 교황교서 「몇몇 직무들(Ministeria quaedam)」부터 소품 중에서 현실적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된 두 가지를 품(品)이라는 용어가 아닌 직(職)으로 바꾸어 ‘독서직’(lector)과 ‘시종직’(acolyte)이란 용어를 사용해 남겨뒀다. (가톨릭신문, 2012년 8월 26일, 윤종식, 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참조)
 
직전에 열렸던 주교 시노드에서 제기되어 논의한 결과를 바탕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성들이 제대 위에서 봉사하는 직무를 공식화하고 제도화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세례의 공통성
 
교황은 이번에 발표된 자의교서 「주님의 성령」(Spiritus Domini)을 통해 교회법 제230조 1항을 수정함으로써 여성들이 독서직과 시종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전례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그런 직무의 수행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차례의 시노드에서 제기된 교부들의 요청을 받아들인다는 점을 자의교시에 명시하면서, 교회법의 개정취지를 이렇게 밝힌다. “발전을 거듭해온 교리가 근자에 들어 이런 개정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의 직무 중 일부는 세례의 공통성에 근거하여 받는 것으로, 세례성사를 통하여 속하게 된 ‘임금의 사제단’(royal priesthood)㈜2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역자 주2] 용어의 선택을 심사숙고한 끝에, 이 영문 기사에 사용된 명사구 “royal priesthood”를 베드로의 첫째 서간 2장 9절의 “royal priesthood”(임금의 사제단)로 해석하여 옮겼음을 밝힌다.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1베드 2, 9)
 
그렇지만 교황은, 여기서 논의되는 평신도의 직무가 성품성사를 통해 수여되는 사제의 직무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란 점을 간과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새로 개정된 교회법의 문안은 다음과 같다. “주교회의의 교령으로 정하여진 연령과 자질을 갖춘 평신도들은 규정된 전례 예식을 통하여 독서자와 시종자의 교역에 고정적으로 기용될 수 있다.” ‘남자 평신도’라고 표기되어 있던 문안에서 ‘남자’라는 단어가 오늘(11일)부로 빠지게 되었다. 평신도의 자격을 남자로 제한했던 교회법이 개정된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이번에 발표된 자의교서에는 신앙교리성 장관 루이스 라다리아 추기경에게 보낸 서한이 첨부되어있다. 이 서한에서 교황은 이런 결정을 내린 동기와 신학적 근거를 설명하고 있다.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발의되고 추진되어온 ‘쇄신’의 영역 안에서 평신도의 사명을 재발견해야할 시급한 필요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오늘날의 교회 상황에서 세례 받은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고 있는 책임에 관한 내용이다.
 
또한 2019년에 개최된 ‘아마존 시노드’의 결과로 발표된 후속 문서인 교황권고를 인용한다. “보편교회가 처해있는 다양한 상황에 비추어볼 때, 남성과 여성 평신도들을 위한 직무가 촉진되고 수여되는 것이 시급합니다. 우리 교회는 세례 받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각종 직무를 통합하고 폭넓게 장려해야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례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평신도와 복음화
 
라다리아 추기경에게 보낸 서한에서 교황은 사제서품과 관련한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을 회상한다. 1994년 성 요한바오로 2세는, 교회가 여성을 서품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서품을 받지 않는 직무에 대해서는 이 제한된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며,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그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고 교황은 덧붙인다.
 
교황은 라다리아 추기경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남성과 여성에게 다 같이 독서직과 시종직에 봉사할 기회를 줌으로써, 여성을 포함한 많은 평신도가 세례를 통해 받은 사제직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전례에 직접 참여하면서 얻게 되는 영적 성장 또한 대단히 클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귀중한 직무에 참여함으로써 신앙생활의 의미를 찾게 되고 자신들이 받은 사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교황은 서한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여성들에게도 이런 직무를 부여하기로 한 결정이 직무 수여를 위한 안정적 근거와 대중적 공감을 마련하고, 주교님들의 권한을 공고히 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보다 효과적으로 복음화 사업에 참여하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출처: Vatican News, 11 January 2021, 12:00, 번역 장주영

www.vaticannews.va/en/pope/news/2021-01/pope-francis-opens-ministries-lector-acolyte-wom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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