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으로 묵주알을 대신하며 그 용도가 얼마나 다양한지 새삼 깨닫는다. 손가락이 하는 일이 그토록 많건만 그걸 보고 놀란 기억이 별로 없는 것도 참 신기하다.
내 양말목에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노란실로 정성스럽게 새겨진 글씨는 소유주의 이름을 대신해 주는 표식이었다. 이불과 베갯잇 뿐 아니라 속옷에까지도 새겨진 걔네들 덕에 빨래는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전해주는 편지처럼 정확히 나를 찾아왔다.
그저 식별부호로만 여기던 그 숫자는 어머니께서 한 땀씩 놓으신 십자수였다. 그 안에 아로새겨진 정성이, 집 떠나 슬픈 어린 가슴을 감싸주었던 것을 그땐 잘 몰랐다. 그 안에 담긴 것은 한없는 희생이고 가없는 사랑이었다. 그것이 낡고 해어지도록 거기에 담긴 것을 나는 다 알지 못했다.
그 나이 돼봐야 안다는 말은 복음 못지않게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믿는다. 미리 알았더라면 눈물도 후회도 남는 것이 없었으리라. 살다보니 겪는 별의별 일도, 지나가고 나면 담소거리 밖에 안 될 것이련만, 나이 들수록 그렇게 넘기기가 버겁게 느껴진다.
슬그머니 시작된 이름조차 생소한 미물의 습격이 장난처럼 번지더니 참혹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부활을 지내고 난 세상이 아직도 조용하다. 그것이 허무인가? 떠들썩거리는 분위기에 길들여진 탓일까? 풍성한 소출을 선사한 밭을 갈아엎어 새로운 씨앗을 심는 생명의 이치를 잊고 살은 탓이다.
끝까지 부여잡고 놓치지 말아야 할 희망! 거기에 흠뻑 감염되어 온 세상에 전염시키는 기발한 생각을 왜 못했을까? 염치없이 또 받은 전대사의 값을 하라 일러주시는 분의 조용한 어조에 비장함이 엿보인다. 그 틈새를 비집고 드러나는 것은 듬뿍 담긴 사랑이다. 어머니의 십자수가 새겨놓은 것이 희망이었음을 육십년이 다 지난 이제야 깨닫는다.
부활 「우르비 엣 오르비」 메시지와 강복
“희망의 전염”
교황은 주님 부활 대축일 「우르비 엣 오르비」 메시지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시련을 겪는 세계가 무관심, 이기심, 분열, 망각의 분위기를 타파하고 ‘희망의 전염병’을 전파하자고 호소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중앙 발코니에는 배너가 걸려 있지 않았다. 교황행진곡도 연주되지 않았고, 성 베드로 광장에는 꽃장식이 없었다. 이탈리아 전역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폐쇄조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주변 거리는 텅 비어 조용했다. (로마시간 어제 오전 10시, 주님 부활 대축일미사)
주님 부활 대축일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가장 가까이 있는 협력자들만 참석한 가운데, 대성당 안에서 전통적으로 해온 부활절 「우르비 엣 오르비」 메시지를 로마와 전 세계에 전했다.
‘색다른 전염병’
교황이 부활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보고 들었다. “나의 희망이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교황은 이 메시지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염되는 ‘색다른 전염병’이라고 표현했다.
“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전염병으로 인해 이미 미증유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인류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금 전하는 기쁜 소식은 이 암울한 밤에 타오르는 새로운 불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일시적으로 문제가 사라지게 하는 마술의 주문과 같은 것이 아니라, 악을 뿌리 채 뽑는 사랑의 승리입니다. 이 승리는 죽음과 고통을 건너뛰지 않고 그 길을 통과함으로써, 깊은 구렁 속에 길을 내어 악을 선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전염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위로
교황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직접적 영향으로 고통 중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많은 이들에게 이번 부활은 고독한 부활절이 되었습니다. 이 몹쓸 전염병으로 인해 슬픔과 고난 속에 살아가는 분들은 외로운 가운데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을 동시에 겪고 있습니다.”
“이 병은 우리가 친교의 소중함을 잃게 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서 성사의 은총을 빼앗아 갔습니다. 특히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로부터 흘러나오는 위로를 직접 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도 막아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기도 속에서 하나가 된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의 머리 위에 당신 손을 얹으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기초적 공익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에게 감사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시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공익봉사를 유지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국민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애쓰는 경찰들과 군인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서 힘과 희망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공동선을 위해 일해 주십시오
교황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일자리에 대한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치적 책임을 지고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공동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모든 사람이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고, 상황이 허락되면 조속히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재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무관심할 때가 아니다
“무관심할 때가 아닙니다.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지금은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전염병에 맞서 힘을 합해야합니다.” 이어서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 관심밖에 있는 소외된 사람들, 난민들과 노숙자들에게 희망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교황은 또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국제 제재의 완화를 촉구한다. 부유한 나라는 가장 가난한 나라의 재정을 돕기 위하여 국가채무를 탕감하거나 감면해 주기를 호소한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의 시련은 우리 모두가 함께 겪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특히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질적인 연대정신 덕분에 과거의 경쟁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연합이 연대의 힘을 잃어가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자신들이 단일 가족의 일원임을 인식하고 서로를 지원해야합니다. 특정 관심사를 이기적인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미래 세대의 평화로운 공존과 발전을 손상시킬 위험을 키울 뿐입니다.”
분열할 때가 아니다
교황은 지금은 분열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세계 모든 지역에서 즉각적으로 휴전이 선포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무기거래에 막대한 돈이 사용되는 것을 비판하면서 시리아, 예멘, 이라크, 레바논에서 지속되고 있는 분쟁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족은 대화를 재개해야 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상황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밝힌다. 한편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자행되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테러공격이 끝날 수 있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호소한다.
잊어버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교황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직면하고 있는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잠시 생각하다가 잊어버릴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수많은 난민과 이주민들을 위해, 특히 리비아와 그리스와 터키 국경에서 견딜 수없는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을 보호해주시기 위해 기도한다고 말한다. 또한 베네수엘라가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의료적 결핍으로 고통 받는 국민에게 국제적 원조를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찾게 되기를 기도한다고 밝힌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의 어둠을 물리치신다
“무관심과 이기심, 분열과 망각 같은 단어들은 지금 우리가 결코 듣고 싶은 말이 아닙니다. 이 단어들은 두려움과 죽음이 우리를 짓누를 때 새어나오는 말입니다. 이 단어들을 다시는 쓰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황은 기도로 금년 부활의 「우르비 엣 오르비」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이미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가련한 인류의 어두움을 흩어버리시고 결코 저물 줄 모르는 당신 영광의 날로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Vatican News, 12 April 2020, 10:37,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20-04/pope-easter-urbi-et-orbi-blessing.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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