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교황님의 성야미사 강론

MonteLuca12 2020. 4. 12. 10:22

희망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다림이다.

간절한 바람이다.

 

막연한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서’,

내 마음이 향하는 곳,

거기에 있기를 바라는 선물이다.

 

희망은 ‘주는 사랑’이다.

희망은 ‘받는 믿음’이다.

둘을 이어주는 용기, 그 은총을 청한다.

 

죽음을 이기신 분,

언제나 승리하시는 분,

주님께서 가져오신 희망이 세상을 가득 메운 부활의 아침이다.

 

로마시간 밤 9시에 파스카 성야미사를 집전하신 교황님의 강론을 전해 드린다.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식지 않았다. 교황님의 말씀은 더 따뜻하다.

 

 

무덤에서조차 생명을 건져내신 예수님

 

프란치스코 교황은 텅 빈 베드로대성당에서 파스카 성야미사를 봉헌했다. 강론을 통해 교황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희망의 메시지와 용기의 선물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한 것으로 만드실 수 있다는 확신에서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 밤(로마시간) 교황은 모든 전례 중에서 가장 장엄한 예식을 집전했다. 베드로 대성당은 거의 비어있었지만,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텔레비전과 라디오, 기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그리스도의 대리자’와 함께 하며, 다시 한 번 그들의 가슴과 가정과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들었다.

 

교황의 강론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희망과 용기, 두 가지 선물에 관한 것이었다. 이 선물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제자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첫 성토요일

 

최초의 성토요일에 일어났던 일의 주역은 여성들이었습니다. 바로 올해가 독특한 이유로 인해 그때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처럼 그들은 눈앞에서 일어난 갑작스런 비극으로 인해 당황했습니다.

고통의 드라마가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목격했고 천근만근 큰 슬픔에 마음이 짓눌려 있었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상황도 이 여성들의 발을 묶어두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하면서도 아주 특별한 일을 했습니다. 요리하기 위해 집에 가지고 있던 기름을 예수님의 몸에 부어드리기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의 어두움을 떨쳐버리고 자비의 불꽃을 피워 올렸습니다.”

 

또 한분의 여성이 계십니다. 성모님은 그 날 온종일 기도하며 보내셨습니다. 그날은 언젠가 성모님의 영광을 기념하는 날로 봉헌될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에 묻혀있는 작은 씨앗이 되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의 꽃을 피우려고 하셨습니다.

이 여성들은 기도와 사랑으로 그 희망의 꽃이 만발하도록 도와드렸습니다.”

 

새벽에 찾아온 희망

 

그날 새벽 여인들이 만났던 분,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에는 희망이 찾아왔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 27) “이것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우리에게도 들려옵니다. 바로 오늘 밤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희망은 우리의 권리입니다. 그 희망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 희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하늘에서 온 선물’입니다. 우리가 애써서 벌은 것이 아닙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다.”라는 염원을 외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희망의 근간이 흔들리는 비통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의 희망은 다릅니다.

그분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선하게 만드실 수 있다는 확신을 우리의 마음속에 심어주셨습니다.

무덤에서조차 생명을 건져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무덤에서 일어나 걸어 나오신 분께서 가져다주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거기서 나온 인간은 없습니다.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을 굴려 치운 분은 우리의 마음을 막고 있는 돌을 제거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가 처해있는 고통과 번민, 죽음의 상황에 몸을 담그셨습니다.

그분의 빛은 무덤의 어둠을 몰아냈습니다. 바로 오늘 그분은, 당신의 빛이 우리 삶의 가장 어두운 구석까지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용기

 

주님의 선물인 용기는 우리의 마음을 가로막은 아주 작은 돌까지 굴려 치워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부활하신 주님의 빛이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두려움을 꿰뚫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신 예수님께서는, 그때와 똑같이 앞서 가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주님께서 삶과 죽음에서 우리보다 앞서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우리의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그분은 우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셨습니다. 그분이 가신 곳은 당신과 제자들이 함께 살았던 곳입니다.

그분에게는 일상생활과 가족, 거기서 함께 했던 일을 추억하게 하는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희망을 심고자 하십니다. 제자들에게도 갈릴래아는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부름 받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갈릴래아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과 부르심을 기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파견

 

갈릴래아는 또한 ‘거룩한 도성’의 기운이 미치지 않는 가장 먼 곳을 의미합니다. 이교도들이 살았던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직후에 제자들을 그곳으로 보내셨습니다. 그 안에 담긴 뜻은 희망의 메시지가 거룩한 곳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살던 상관없이 희망은 모두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갈릴래아에 가서 ‘생명의 노래’를 불러야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받은 우리가 그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죽음의 울부짖음이 그치게 해야 합니다. 더 이상 전쟁은 안 됩니다. 무기의 생산과 거래를 중단시켜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총이 아니라 빵입니다. 순결무구한 생명을 끊는 낙태와 살해를 근절해야합니다. 생활필수품조차 부족한 가난한 이들의 빈 손을 모두 채울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의 마음이 활짝 열리기를 기대합니다.”

 

예수님 발을 잡다

 

여인들은 무덤에 들어갔다가 돌아 나온 발을 붙잡고 절하였습니다. 죽음을 딛고 희망의 길을 열어준 그 발을 잡았던 것입니다.

 

“희망을 찾는 순례자로서,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당신을 붙잡고 있습니다. 죽음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당신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엽니다. 당신은 생명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Vatican News, 11 April 2020, 22:15,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20-04/pope-easter-vigil-homily-hope-courage-holy-wome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