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보고 만지고 맛보기

MonteLuca12 2021. 4. 24. 06:32

거실에서 공원이 내려다보인다는 분양담당자의 말이 집을 사기로 결정하는데 큰 작용을 했었다. 그 말의 부족한 신뢰도 때문에 아쉬웠던 마음을 메워준 것은 시시때때로 다양한 모습을 선물하는 관악산이었다. 내 눈에 익은 그 산의 봉우리 두 개가,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양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새로 얻은 사무실 창을 통해서도 그 봉우리를 볼 수 있다. 정말 그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15년이나 머리에 박혀있던 기억을 꺼내, 망막에 맺힌 상과 포개는 일을 회사에 나갈 때마다 빠트리지 않는다.

 

서울 하늘 아래서 살아온 세월이 55년이나 됐지만 이제야 처음 밟는 땅이 이렇게도 많다. 얼마나 좁은 영역에 갇혀 살아온 것인가? 복잡한 감정이 스친다. 후회스럽다거나 미련이 남아 서운하다는 생각과 다른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어찌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받는 작은 충격이라 할까? 과히 기분 나쁘지 않은 당황이다. 숨을 헐떡이며 씻어낼 수 있는 창피고, 걸으며 나누는 담소로 덜어낼 수 있는 부끄러움이다. 얼마나 넓은 땅 위에 얼마나 많은 발자국을 찍어 놓았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충동과 함께, 살아온 햇수와 남은 날수에 대한 어림이 머릿속을 떠돈다.

 

굳이 뒤집어엎을 필요가 있을까? 안 하던 짓을 새삼 이제 와서 시도하려 기를 쓰는 것이 옳을까? 재고 따져서 그런 걸 해보려는 것이 아니다. 나이테 켜켜이 엉뚱한 용기가 스며있는 것이 희한하다. 뚱딴지같고 모몰염치(冒沒廉恥한 짓에 거침이 없어진다. 주말이면 무턱대고 따라나서서 결코 평탄하지 않은 산길 돌부리에 발을 딛고 신체기능을 시험한다. 약간의 두려움과 순간의 고통 뒤에 따라오는 기쁨이 결코 작지 않다.

 

어쩌면 가장 쉽고 평범한, 살면서 늘 해온 짓 안에 큰 진리가 담겨있을 거란 깨달음이 어렴풋이 다가온다. 교황님의 말씀과 토마스 성인의 기도가 겹친다.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길 없고...” (성 토마스의 성체찬미가)

 

그리스도교 정신은 사랑의 관계, 돌봄, 기쁨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활 제3주일 삼종기도 중에 한 훈화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되돌아보게 했다. 그것은 교리나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주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라고 말한다.
 
이날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교황청 사도궁에 위치한 서재의 창문을 열고 신자들을 바라보며 부활삼종기도를 주례했다.
 
그동안 교황은 이탈리아 정부의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 확산을 억제하는 법령에 따라 사도궁 도서관에서 인터넷 생중계로 삼종기도를 바쳐왔다. 베드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3월 14일 이후 처음이다.
 
교황의 훈화는 이날 봉독된 루카복음 24장의 내용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를 하고 있던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인사하시는 장면이다.
 
“제자들은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손과 발에 나있는 상처를 보여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그리고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먹을 것을 달라고 하여 놀란 그들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이 복음 구절에는 매우 특징적인 세 가지 동사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보다’, ‘만지다’, ‘먹다’입니다."
 
“세 가지 동사는 모두 우리 개인의 생활과 공동체의 생활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기쁘게 만들어주는 행동을 묘사하는 동사인 것입니다.”
 
‘보다’는 무관심을 탈피하는 첫 번째 단계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의도를 나타내고 의지를 표현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여기서 사용된 동사 ‘보다’는 사랑의 행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녀들을 보고, 연인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좋은 의사가 환자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과 같습니다. 보는 것은 무관심에서 탈피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과 고통 앞에서 얼굴을 돌리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행위입니다.”
 
‘만지다’는 친근하게 느끼는 감정과 신체접촉이며 삶을 공유하는 것
 
“‘만지다’ 역시 사랑의 동사입니다. 사랑은 친근하게 느끼는 감정을 일으키고 신체접촉을 유발합니다. 그리고 삶을 공유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유령이 아님을 확인시키기 위해 제자들에게 당신의 손과 발을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이런 행위를 통해 당신과 우리의 관계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같은 눈높이에 있다는 것을 제자들과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우리와 형제자매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황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마리아인은 길에서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발견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들여다보는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에게 다가가 상처를 치료하고,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에 데려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눈에 띄게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먹다’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
 
“세 번째 동사 ‘먹다’는 인간의 천성에 내재되어 있는 원초적 궁핍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식사하는 것은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식사하는 자리는 친교를 나누는 모임이고 축하하는 행사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화기애애한 친교의 자리에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자주 나타납니다. 부활하신 다음에도 제자들과 마주앉아 음식을 드셨습니다. 성찬례는 교회 공동체의 상징적인 표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복음구절이, 예수님은 ‘영’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말로 훈화를 마무리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교리나 도덕적 이상에 따라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보고, 그분을 만지고, 그분에 의해 영양분을 섭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의 사랑에 의해 변화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형제자매로 맞아들여, 보고, 신체접촉을 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출처: Vatican News, 18 April 2021, 09:37, 번역 장주영

www.vaticannews.va/en/pope/news/2021-04/pope-francis-regina-coeli-catechesis-3rd-sunday-east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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