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성당의 종이 울리는 까닭은?

MonteLuca12 2020. 3. 27. 09:08

귀가 열려 어머니의 목소리를 알아채던 날부터 나는 성당의 종소리를 들었다. 우리 성당 종이 내는 소리가 중후한 2/2박자라면, 예배당 것은 경박한 4/4박자로 귀에 거슬리는 강한 소리를 냈다. 그땐 미사시작 30분 전에 치는 예비종이 있었다. 긴 조과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그 종은 내게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배달했다. 복사라는 특권이 제공한 그 짧은 시간은, 나를 부르시는 그분께서 매일 채워주시는 사랑의 바구니였다. 작고 여린 가슴을 흔들어 깨우던 종소리의 기억을, 켜켜이 쌓인 잡념더미에 묻어두고 긴 세월을 살았다.

 

예배당의 그것보다 더 가벼운 종소리가 훨씬 긴 세월동안 나를 지배했다.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다시 눈을 감을 때까지, 나는 그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고사리 손이 바친 제물을 거두어주신 분. 그분께서 응답으로 보내주신 축복을, 불편하겨 여겼던 그놈이 시샘했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자유를 구속하는 자물쇠였고 순수와 열정을 옥죄어 말라버리게 하는 사슬이었다.

 

확성기가 내뿜는 가짜 종소리에 비하면 우리 성당 앞 예배당 종에는 그나마 눈곱만한 정이 붙어있다. 매일 아침 나를 부르던 성당의 종소리를 그렇게 퇴출시킨 역사가 못내 슬프다. 하기야 도농을 가리지 않고 그 많은 예배당이 동시에 쳐대는 소리는 견딜만할까?

 

소음으로 뒤덮인 세상을 산다. 이중창에 막힌 전자음은 가족의 대화를 덮고, 귓속을 파고든 초소형 스피커는 세상을 향한 마음을 닫게 만든다. 자유와 구속이 거기서 갈리고, 사랑과 속박의 사슬이 여기서 결정된다. 작던 가슴은 헛바람에 부풀어 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여린 손은 욕심으로 경직되어 온기를 잃었다.

 

오늘, 교회가 이 땅에 들려주는 소리가 있기는 한가?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나누는 사랑에 온기가 남아있을까? 현대화의 상징인 미국의 큰 도시에서, 성당의 종이 울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시카고의 성 야고보 성당 정면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들을 위한 종소리
 
전 주민 '자택 격리' 명령이 내려진 미국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대교구장 블레스 수피치(Blase Cupich) 추기경은 시카고대교구가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한 끝에, 교구 모든 성당의 종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하루 다섯 번 울리기로 결정했다.
 
수요일 현재 미국 일리노이주에서는 Covid-19에 1,500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16명이 사망했다.
 
시카고 대교구장 블레스 수피치 추기경은 바티칸 라디오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교구 모든 본당은 하루 다섯 번 종을 울릴 것입니다. 아침 9시에는 환자들을 위해서, 정오에는 의료 종사자들 위해 종을 칠 것입니다. 오후 3시 종소리는 응급의료요원들과 필수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고, 오후 6시에 치는 종은 모든 나라의 지도자와 국민들을 위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밤 9시에는, 코비드-19로 선종한 모든 영혼들을 위한 종소리가 전 교구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회
 
“아마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것은 2020년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었나 봅니다. 이런 현상은 가족생활과 세계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집에 갇힌 채로 가족들과 함께 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이 상황에 맞춰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창조적인 의견을 모을 때입니다. 이런 어려움은 오히려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여정의 속도를 줄이고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가족끼리 볼 수 있는 것은 들고날 때뿐이고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런 일로 인해 우리에게는 모처럼 가족끼리 한 공간에서 시간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거리의 친밀감
 
수피치 추기경은 이렇게 말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야기된 이 비상상황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치료해주시기 위해 부르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쳐주신 이야기를 전하는 지난주일 복음(요한 9, 1~ 41)은 우리의 고통 ​​가운데로 가까이 다가오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눈먼 사람에게 매우 다정한 행동을 보이십니다. 당신의 침으로 개어 만든 진흙을 그의 눈에 발라 고쳐주십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다가갈 수는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마음을 나누며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아픔은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나누어가진 인간성을 되찾기 위해서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합니다.“
 
폭력과 인종 차별의 전염병은?
 
“이 코로나바이러스의 비상상황이 끝나면 인류를 괴롭히는, 또 다른 전염병 퇴치를 위해 싸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의 거리에는 폭력과 복수가 난무하고, 인종 차별과 증오가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이라는 전염병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수피치 추기경은 코로나-19로 인해 고통 받는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권고안을 제시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성과 취약점에 대해 깨달은 것을 흘려버리지 말고 잘 챙기도록 합시다. 아울러 하느님의 방식에 따라 그 가치를 평가하는 법도 잘 익혀둡시다. 저는 이것이 내일의 과제를 풀어낼 현명한 지혜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출처: Vatican News, 25 March 2020, 13:28,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church/news/2020-03/cardinal-blaise-cupich-chicago-usa-coronavirus-bell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