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돌아 오너라"

MonteLuca12 2020. 3. 21. 11:06

느낌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분의 기분을 생각하고 정서를 읽어내려 노력한다. 숨은 뜻을 밝히려 열심히 헤집는다. 글로 전해지는 교황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늘 야릇한 부담으로 시작한다. 자주 놀라고, 놀란 만큼 재미있다. 덤으로 얻는 기쁨이 결코 작지 않다.

 

풍덩 빠져 헤엄쳐 다니는 느낌이다. 몰입하다가 못해 미쳐버리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예쁘게 운(韻)을 살리고 고스란히 뜻을 담아내고 싶었다. 읽을 땐 마구 솟아오르던 고운 언어가 연필을 드는 순간 비눗방울 터지듯 허무하게 날아간다. 그걸 찾아 헤매다가 부질없이 시간을 보낸다. 어차피 분향처럼 피어올라 그분께 보내드린 것이다. 기어이 생각을 터는 마음이 늘 아쉽고 언제나 서운하다.

 

지켜주시는 하느님을 느낀다. 그토록 원망해대는 놈을 야단치지 않으시고 말없이 허리춤에 감추고 계신 것이 있었다. 금세 잊어버리는 새를 빗대어 지껄이던 흉을 후회한다. 눈을 돌리자마자 떠오르는 것이 걱정이다.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까막눈으로 헛것을 보고 산다. 의젓하게 참고 기다리면 다 주시는 것을 안달하고 투덜댄다. 자랑하던 믿음은 언제나 입발림이다.

 

아버지의 기억을 덮고 있는 먼지를 닦아낸다. 무뚝뚝한 아버지의 품을 더듬는다. 그 가슴의 온기가 찌그러져버린 혈관을 탄다. 긴 세월 수천 번을 듣고 살아왔지만 정작 나는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호칭을 큰 소리로 외쳐본다. 많이 멋쩍지만 불현듯 그리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용기를 준다. “아빠! 고마워요!”

 

[역자 주] 교황님의 말씀 중에 나오는 노래가사는 번안을 찾지 못해 역자가 임의로 옮겼음을 밝힌다. 노래의 제목은 “Torna Piccina Mia”. “내 아들아, 돌아오너라!”라는 뜻이다.

 

“아버지께 돌아오너라!”
 
교황은 금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아침미사를 집전하면서 코로나-19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 베르가모 지역의 의료진을 위해 기도했다.
 
“어제 베르가모 지역의 한 신부님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의사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력이 소진되어 간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그분들은 감염된 환자들을 돕기 위해,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진정으로 목숨을 바치고 있는 의인들입니다. 신부님은 그곳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해주었습니다.”
 
교황은 위기관리를 위하여 애쓰는 시당국의 지도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몰이해로 인해 고통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분들은 우리가 이 어려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버팀목입니다. 위기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어린 시절 불렀던 노래
 
교황은 강론에서 제1독서인 호세아서의 말씀과 관련한 당신의 추억을 소개한다.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호세 14, 2) 이 구절을 읽을 때면 75년 전 카를로 부티가 부른 노래가 떠오른다며 그때를 회상한다.
 
“제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이탈리아 가족들은 이 노래를 즐겨 들었습니다. 그들이 아주 좋아하던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아버지에게 돌아가면 여전히 자장가를 불러주실 거다. 돌아가거라! 아버지가 널 부르고 계시지 않니? 하느님이 너의 아버지이시란다. 널 야단치지 않으실 거야. 너의 아버지이시니까. 집으로 돌아가거라.”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교황의 추억은 루카복음 15장으로 이어진다.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또 있습니다. 돈을 싸들고 집을 나가 탕진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입니다.”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봅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매일 같이 테라스에 나가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몇 달 동안, 아니 몇 년 동안 그렇게 했는지 모릅니다. 그는 한없이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아버지의 인자함
 
“그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인자하심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순 기간 동안 우리는 아버지의 자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사순 시기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때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고 그리운 아빠에게로 돌아가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저는 아버지께 돌아갈 염치가 없습니다. 아버지께 너무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돌아오너라! 아무리 멀리 떠나가 있어도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네가 치러야 할 대가는 전혀 없다.’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호세 14, 4) 여러분도 아버지께 돌아가십시오. 그분의 자비가 우리의 잘못을 모두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세상살이 속에서 수없이 상처받은 우리를 치유해 주실 것이라고 교황은 강조한다.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 그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제가 없을 때의 고해성사
 
교황은 집으로 돌아오는 습관은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의 몸을 받아먹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많은 신자들이 부활대축일 이전에 고해성사를 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저는 집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고 그분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사제를 만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교리서에는 어떻게 나와 있을까요? 그 답이 아주 명쾌하게 나와 있습니다. 고백할 사제를 찾지 못하면 하느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분은 당신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께 진솔하게 다 털어놓으십시오. ‘주님. 저는 이런 짓을 하고 저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진정한 마음으로, 뉘우치는 몸짓으로 용서를 청하십시오. 그리고 이 상황이 종료되면 고해성사를 보러 가겠다는 약속을 하십시오. 그 즉시 하느님의 은총이 당신에게 쏟아질 것입니다. 이끌어주는 사제의 손이 없더라도, 가톨릭교회 교리가 가르쳐주는 대로 여러분은 하느님의 용서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돌아옴
 
강론을 끝내면서 교황은 돌아온다는 말이 오늘 하루 종일 우리 귀에서 울리면 좋겠다고 말한다.
 
“당신의 아빠에게 돌아가십시오. 아버지께로 돌아가십시오. 아버지께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 베풀 잔치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출처: Vatican News, 20 March 2020, 09:05,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francis/mass-casa-santa-marta/2020-03/pope-homily-return-father-daddy-hosea-confession-carlo-buti.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