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아버지의 마음

MonteLuca12 2020. 3. 15. 13:42

봄은 언제나 그렇게 왔을 텐데 느낌이 전혀 다르다. 괜히 더 추운 것 같고 유난히 올해만 더디게 오는 것 같다. 창을 통해 따스한 기운을 전하는 햇살이 반가워 밖으로 나왔다. 입을 가리고 목도 싸맸지만 옷깃을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에 몸이 잔뜩 움츠린다. 바이러스에 위축된 마음이 다시 한 번 쪼그라진다.

 

시름시름 앓던 세상의 병이 깊어진다. ‘세계적 대유행’이라는 호화스런(?) 이름을 단 바이러스가 지구의 구석구석을 파헤쳐 병을 심는다. 휘저어진 마음에 생긴 상처가 또 다른 병을 만든다. 서민의 주머니를 송두리째 뒤집어엎는 파생 질환은 안 그래도 가느다란 목구멍을 옥죄어버린다. 순식간에 깊어진 병이 의술을 조롱하고 희망의 의지를 뿌리 채 흔든다. 다음 주일엔 성체를 모실 수 있으리란 작은 소망은, 앞이 보이지 않는 깊은 시름에 갇힌 가슴들을 뚫지 못하고 거꾸러진다.

 

어릴 적 강산처럼 내린 눈에 갇혀 며칠간 방안에 고립된 경험이 있다. 그때보다 훨씬 긴 시간을 집안에서 보낸다. 아내와 이렇게 함께 오래 지낼 줄 몰랐다.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자칫 마음 상하면 도망갈 곳이 막막하다.

 

내 걱정을 들으신 건가? 교황님께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집전하셨다. 미사의 강론이 가슴을 콕 찌른다. 가족 간의 사랑이 병의 악마를 막아낼 힘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전달되는 새로운 사순의 의미, 그것은 평화와 기쁨의 보관소 ‘집’이다.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교황

가족을 위한 미사
 
교황은 토요일 아침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신자들과 함께 가정을 위한 지향을 가지고 미사를 봉헌했다. 특히 ‘이 어려운 상황’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가정의 부모들을 위해 기도했다.
 
교황은 세계적인 유행병에 감염되어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자고 제안하면서 이 미사의 특별한 지향에 관해 상세히 설명한다.
 
“오늘 저는 가정을 위하여 특별한 지향을 가지고 이 미사를 봉헌합니다. 어느 날부터 시작된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안전 때문에 학교 문이 닫혀 아이들은 집안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기약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참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평화와 기쁨이 깨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는 경우는 더욱 특별한 방법이 강구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애 어린이 돌봄센터마저도 폐쇄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이런 가정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그들이 평화를 잃지 말고 온 가족이 힘을 내어 기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합시다.”
 
이날 복음은 교황이 소중하게 여기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였다.
 

 
교황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두 부류 사람들의 말과 감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두 가지 유형의 인간, 그것은 죄인과 바리사이로 상징되는 것이다.
 
“복음에 나타나는 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자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불평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불평합니다. 죄인과 함께 음식을 먹음으로써 불결해진다고 말합니다. 이 비유의 나머지 부분이 이야기의 전말을 잘 설명해줍니다.”
 
감정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구원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자기들을 인도해줄 목자를 찾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목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다가갑니다. 반면에 율법학자들은 그들에 대해 적개심을 느낍니다.”
 
“율법학자들은 자만심에 가득 차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학을 나왔다.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가 두 개다. 법을 꿰뚫고 있다. 법의 취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법조문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모두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죄인들을 멸시합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작은아들은 가출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감옥에 갇혀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재산 가운데에서 자기에게 돌아올 몫을 달라고 요구하는 뻔뻔함을 보여줍니다.”
 
“자기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무 말도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상함과 사랑 안에 고통을 감춥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들이 돌아오는 날, 아버지는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한결같이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광경을 본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고 아버지를 원망합니다.”
 
“불같이 화를 내는 큰아들처럼,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할 대우를 못 받았을 때 분노를 통해 섭섭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문제점
 
“아버지의 집에 사는 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지만 아버지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께 서운한 생각이 들어 화가 났던 것입니다. 그는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죄인인 동생이 돌아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푸는 것을 보자 화가 치밀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문제를 이렇게 규정합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아버지의 이런 생각은 큰아들이 결코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 마치 호텔에서 사는 것처럼 집에서 살았습니다. 작은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의 죄에 대해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안아주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에게는 부자간의 관계에 대하여 설명해야 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의 고정관념을 깨기가 어려웠습니다. 자식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교황의 기도
 
“우리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그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부자간, 형제간에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는 사라지고 일로 연결된 동료처럼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 기도하면서 우리의 가정이 안고 있는 문제를 찾아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출처: Vatican News, 14 March 2020, 10:00,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francis/mass-casa-santa-marta/2020-03/pope-mass-families-prodigal-s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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