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놀라운 聖召

MonteLuca12 2020. 3. 4. 17:07

‘자시(子時) 미사’라고 불렀다. 일 년에 두 번, 밤 12시에 드리는 부활과 성탄의 ‘성야미사’를 말하는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언제나 일찌감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성당에 가있었다. 복사연습이 주된 이유였지만, 대첨례를 지내기 위한 이런 저런 준비에 심부름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복사들의 장날이었다.

 

밤늦게까지 깨어 있으려니 말할 수 없이 배가 고팠다. 일찍 잠자리에 들던 습관에 길들여져 조용하던 배가 평소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그러나 은근히 기다리는 것이 그 틈에 끼어 있었기에 그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식복사 아주머니는 언제나 새참을 챙겨주셨다. 이상하게도 사제관의 음식은 꿀맛이었다. 안으로 말아 물은 입술이, 아쉬움에 입속을 휘젓는 혀를 밀어 넣는다. 미사 시작 세 시간 전부터 공심재(空心齋)를 지켜야했기 때문에 그 꿀맛을 느긋하게 음미하지 못했던 것이 그 이유다.

 

나중에 용어가 공복재(空腹齋)로 바뀌었다. 그 때도 비우는 것은 배였다. 그러나 그 용어의 뜻은 ‘마음을 비우는’ 재계(齋戒)였다. 미사가 늘 새벽에 있는 것이 공심재 때문일 거란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신자가 늘고 그들의 삶이 다양해지면서 생긴 변화 중에는, 저녁미사가 생긴 것 말고도 공복재가 한 시간으로 짧아진 것이 있다. 어려서부터 알고 있던 축구의 규칙이 바뀌는 것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퍽 생소한 느낌이 기억으로 거기에 붙어있다.

 

대제(大齋)와 소재(小齋)는 단식재와 금육재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순시기를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 중 하나인 단식은, 사순시기에만 남아있는 의무 재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생각하고 자신의 죄와 욕정을 끊고 그리스도께 온전히 봉헌하려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굿뉴스 교회법자료실 참조) 단식은 공복이나, 이를 통해 진정으로 비워야 할 것은 마음(空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비워진 마음이 “성소의 예언적 성격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요소”라는 피정지도 신부님의 말씀이 성체를 모시기 위해 준비하던 마음과 닿아 있다. 그 마음에 울려오던 ‘거룩한 부르심(聖召)’을 추억한다.

 

교황청 사순 피정 중의 성체강복

하느님의 성소는 놀라운 일
 
교황의 사순피정 두 번째 날 묵상주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라고 모세를 부르시는 성소(聖召)에 관한 것이었다. 지도신부는 하느님의 뜻에 저항하려는 유혹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피정 2일 오후] 삶의 전환점이 되는 성소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개인적으로 부르십니다. 성소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써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만남입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전환점이 됩니다. 주님의 음성을 다시 듣기 위해 우리가 거듭 태어났던 그 순간으로 자주 돌아가야 합니다.”
 
피정지도를 맡은 보바티 신부는 오후의 묵상 주제로 탈출기 3장 1~12절, 마태오 복음 16장 12~23절, 시편 63편을 선택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사람들이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그 삶은 형제자매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는 자기희생의 삶이며,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삶입니다."
 
“북새통의 세상에 살면서 지치고 피곤해 쓰러질 것 같은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것이 바로 더 높은 차원의 삶을 갈망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무의식중에도 우리는 이런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삶을 보여주고 충족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십니다.”
 
성소는 자기결정이 아니라 계시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앞으로 다가가면서도 자신이 거룩한 곳으로 가까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모세처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성소의 예언적 성격을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하느님께서 계시하시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 명확히 깨닫고 자기가 결정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실 때, 모세는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응답을 드린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열어 깨달음과 순종의 여정에 내어 맡긴 것입니다.”
 
[피정 3일 아침] 하느님의 은총을 외면
 
피정지도신부는 화요일 아침 묵상 자료로 우리에게 쏟아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알아보지 못하고 외면하는 인간의 모습에 관한 성경구절을 제시했다. 탈출기 5장 1~23절, 마태오복음 13장 1~23절, 시편 78편이다.
 
“파라오를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라는 소명을 하느님께로부터 받고 왔다는 모세의 이야기를 듣고 파라오는 강하게 저항합니다.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그 주님이 누구입니까?’ 그가 보여준 모습은 모든 반대편을 힘으로 무너뜨리려는 권력의 화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달랐습니다. 이방인이나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이들의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근본적인 혁신을 원하셨습니다.”
 
오만의 위험
 
보바티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원의에 항거하여 꼴지에 있는 것을 맨 앞에 두고자 하는 것은, 은총을 거부하고 성령을 거스르는 모습의 한 유형입니다.”
 
“오늘날 갖가지 모습의 오만이 하느님과 그분의 예언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재산이나 문화, 또는 강압적 권력이 가지는 과시적인 요소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오만은 개인적 자존심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결권, 선택권, 자유의지란 미명하에 행사하는 권리주장이 그런 것들입니다.”

출처: Vatican News, 03 March 2020, 12:56,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20-03/pope-francis-curia-retreat-day-2-vocation-mose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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