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계절이다. 누구는 심술쟁이라 하고 다른 이는 샘쟁이라 부른다. 싫은 듯 돌리는 꽃망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묻었다. 못 마땅한 듯 꼬는 버들의 허리에 교태가 휘감겼다. 봄을 부르는 바람의 질투가 밉지 않다. 동쪽 끝 바다 내음이 코에 감돈다. 봄에 부는 바람에는 내 고향의 따뜻함이 서려있다.
맥을 잃은 바람이 삶의 찌꺼기를 제대로 씻어내지 못하는 세상, 시름시름 앓는 꼴이 심상치 않은 병을 얻은 것 같다. 겨울이 비실비실 추위를 피해갈 때 알아 본 징조다. 세상사가 뒤틀리고 허망한 마음들이 엉클어진다. 만남이 취소된 거리가 휑하다. 대화가 줄어들고 웃음이 사라진다. 급기야 성당 문이 걸어 닫히고, 가냘픈 성체등 홀로 온기가신 감실 속의 주님을 지키고 있다.
“떨기 위에서 타오르는 불꽃”, 그 속에서 모세를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용하던 거리에서 함성이 들려온다. “우리를 이끌고 갈 모세는 어디에 있나요?” 애절하게 외치는 군중들 속에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가 보인다. 그 위에 불꽃이 피어오른다. 바람을 타고 따뜻한 기운이 퍼져 나간다. 봄이 오고 있다.
하느님과 절친한 친구의 모범인 모세
교황은 피정지도를 맡은 피에트로 보바티 신부에게 편지를 보냈다. 보바티 신부는 이번 교황청 임직원들의 피정을 하느님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모세에 대한 묵상으로 시작했다.
감기로 인해 피정장소에 가지 못한 교황은 피정지도 신부에게 편지를 보내 아리치아에서 열리는 주년 피정의 개막 인사를 전했다. 교황은 교황청 근처의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개별적으로 이 피정에 동참하고 있다.
이 편지에서 교황은 피정 지도신부와 참석자 모두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내리시기를 기원하는 기도를 담았다.
“장소는 다르지만 저는 이곳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 방에서 보바티 신부님의 강의와 지도에 따라 피정에 참여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피정 1일] 하느님의 계시를 받음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인 보바티 신부는 주일 저녁에 있은 첫 묵상의 주제에 관해 설명했다.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출애 3, 2)은 출애굽기, 마태오 복음, 시편 기도에 비추어 볼 때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을 상징하는 징표라고 말한다.
교황은 아리치아에 있는 ‘예수 디빈 마에스트로의 집(Casa Gesù Divin Maestro)’에서 피정 중인 교황청 식구들에게, 구약의 모세 이야기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평안을 누리도록 초대받는 내용이라고 설명한다.
기도의 모델
보바티 신부는 말한다. “모세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만남의 천막’(출애 33, 7)안에서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기다렸습니다. 거기서 모세는 주님을 직접 뵙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불꽃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 불꽃은 우리로 하여금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는 증거자의 능력을 줍니다.”
보바티 신부는 교황청 직원들의 피정이 지니는 의미의 상징으로 모세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모세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순종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불에 타는 떨기 앞에서 신을 벗고 다른 길로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외에는 다른 길도, 선택할 방향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피정 2일] 열망의 여정
피정지도 신부는 월요일 아침 묵상의 주제를 탈출기 2장 1~10절, 마태오 복음 1장 18~25절, 시편 139편에서 골랐다.
보바티 신부는 다시 ‘만남의 천막’에서 모세가 바친 기도를 예로 삼아 피정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를 ‘열망의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모세가 천막에 들어가면, 구름 기둥이 내려와 천막 어귀에 머물렀는데 이것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가까이 오셨다는 표시였습니다.”
“기도는 사람들을 말로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진정한 기도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예언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침묵 중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불타지만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
보바티 신부는 계속해서 불에 타는데도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에 대한 경험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람은 그 떨기나무처럼 부서지기 쉽고 연약하고 가련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지킬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떨기나무 위에서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생명입니다.
“피정은 단순히 영적인 열성을 되살리려는 교회의 훈련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에 대한 다짐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가져다주신 선물을 받기 위해 마음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출처: Vatican News, 02 March 2020, 12:14, 번역 장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