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2025년 교황청의 사순시기 특강(4)

MonteLuca12 2025. 3. 14. 06:17

 

“첫 번째 죽음”

 

사순시기 피정을 지도하는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인 로베르토 파솔리니 신부는 ‘첫 번째 죽음’이라는 제목의 세 번째 묵상을 인도했다. 교황청의 관료들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번 영신 수련의 주제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다.

 

[세 번째 묵상]

 

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어려움을 겪을까요? 성경은 처음부터 인간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무감각했고 적대적이었다는 사실을 전해줍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일’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백성을 꾸짖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군중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메시지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단순화하려는 목적이었다기 보다는, 충만한 삶의 가능성에 마음을 닫고 있는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을 열도록 게 해주려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이러한 상태를 역설적인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미 죽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여기서 죽음은 삶의 마지막 사건인 생물학적 죽음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원한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닫힌 마음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이러한 감수성의 상실을, 교회의 전통 안에서 ‘원죄’라고 이름 붙여진 인간의 죄를 통해 설명합니다. 인간은 생명을 선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느님께서 정해 놓으신 한계를 넘어서 생명을 통제하려 듭니다. 그 결과는 뱀이 약속했던 자율성이 아니라 수치심과 방향 감각의 상실입니다.

 

이 첫 번째 ‘내면의 죽음’은 마음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공허함을 떨쳐내려 하기보다는 겉치레, 사회적 역할, 업적 등으로 자신의 취약성을 덮으려는 끊임없는 시도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태도에 놀라지 않으십니다. 그 상황에 대한 하느님의 첫 번째 반응은 “너 어디 있느냐?”(창세 3, 9)라고 물으시며 사람을 찾은 것입니다. 이는 ‘내면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구원 여정의 출발점임을 의미합니다.

 

이 논리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도 나타납니다. 하느님은 형제간의 살인을 막기 위해 개입하지 않으셨지만, 카인이 자신의 죄책감에 빠져들지 않도록 보호하십니다. 이는 공허함이나 죄책감 같은 우리의 ‘첫 번째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지금, 여기에서 재발견하도록 만드는 기회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단순한 미래의 희망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극적 삶을 심판의 징표가 아니라 회개의 기회로 받아들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루카 13, 4-5)

 

하느님께서는 ‘내면의 죽음’을 패배로 보지 않고 새로운 실존(實存)의 시작점으로 봅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진짜 장애물은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시간을 초월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깨달음은 오로지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그분께 대한 믿음으로 사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출처: Vatican News, 10 March 2025, 16:23,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vatican-city/news/2025-03/spiritual-exercises-of-the-curia-the-first-death.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