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2025년 교황청의 사순시기 특강(2)

MonteLuca12 2025. 3. 12. 07:28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사순시기 피정을 지도하는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인 로베르토 파솔리니 신부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주제로 이번 피정의 첫 번째 묵상을 인도했다.

 

[첫 번째 묵상]

 

그리스도의 부활에 뿌리를 둔 교회의 신앙은 언제나 죽음을 뛰어넘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제공해 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약속은 희미해졌고 오늘날에는 논쟁의 여지도 남기지 못한 채 모든 이들의 관심에서 외면당하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무관심한 상황에서 신자들은 영원한 생명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고 그 진정한 의미를 회복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지금 지내고 있는 희년과 교황 성하께서 겪고 있는 깊은 고통 속에서 더욱 시급한 과제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작하려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영신 수련의 여정은 ‘공적 계시’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묵상은 신학적 사상을 쉽게 이해하도록 요약해 놓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간결한 구절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수님의 죽음과 연결지으며, 죽음을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여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20항) 이 개념은 로마서의 말씀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로마 6, 3)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죽음을 ‘사심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라고 정의합니다. “죽음은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시간인 인생에 끝을 맺는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21항) 그러나 구원은 그리스도를 정식으로 알게 된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양심에 따라 진심으로 하느님을 찾는 이들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또한, ‘공심판’(최후의 심판)이 단순히 외적인 행위에 근거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얼마나 사랑을 실천했는지를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우리의 삶이 끝나는 날, 우리는 자신이 실천한 사랑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역자 주] 사심판 (judicium particulare; 개별 심판)은 죽은 후에 하느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받는 심판을 말한다. (출처: 가톨릭사전)

 

인간의 궁극적인 운명은 세 가지 가능성으로 나누어집니다. 곧, 천국, 지옥, 연옥입니다. 천국은 인간 존재의 완전한 성취로 각자가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친교를 통하여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 것입니다. 반면에 지옥은 하느님과의 영원한 단절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역사적으로 어떤 사람도 확실하게 지옥에 떨어졌다고 선언한 적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연옥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하여 거치는 정화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연옥의 개념에서 하느님 계시의 독창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마지막 정화 과정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교회의 성찰은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희망을 키우기 위한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운명은 사랑 안에서 살겠다고 선택하는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진정한 정화는 완벽해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빛 속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깨우쳐 줍니다.

 

우리는 종종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히지만, 복음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진정한 ‘불완전함’이란 나약함이 아니라 사랑의 부족이라는 것입니다. 연옥은 천국에 들기에 부족한 것이 아닌지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마지막 기회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친교를 나누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공간이 연옥입니다. 그곳은 더 이상 하느님께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도록 내맡기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영원’이라는 개념은 단지 죽은 이후에 주어지는 미래의 보상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사랑과 친교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이미 여기에서 시작된 현실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운명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 속에 기록된 것입니다.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우리가 마침내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 뵙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그 순간 깨닫게 될 것입니다.

 

(2025년 3월 9일 일요일 오후 5시)

 

출처: Vatican News, 09 March 2025, 18:00,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vatican-city/news/2025-03/roman-curia-spiritual-exercises-pasolini-first-reflectio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