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하느님의 말씀 주일

MonteLuca12 2020. 1. 19. 11:44

정초가 되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작은 수첩을 달력만큼 많이 받았다. 매일의 생활 기록과 예정사항을 적는 칸이 점점 편하게 바뀌는 것을 보며 그것을 디자인한 사람이 나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미소 짓곤 했다. 깨알만한 글씨가 빼곡히 적힌 수첩 20권 정도를 아직 버리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씩 꺼내 읽으며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옛일을 떠올리던 습관이 제법 큰 즐거움을 주었다. 스마트폰에 밀려 존재가치가 없어진 수첩과 함께 그 버릇도 맥을 이어갈 힘을 잃었다. 그래도 거기엔 돌아가고픈 과거의 추억이 간직되어 있고, 보고 싶은 얼굴들이 사진첩처럼 보관되어 있다. 머리와 가슴에 새겨진 ‘그리움’이 거기에 간직되어 있다.

 

‘그리움’이란 우리말은 어감부터 부드럽다. 담고 있는 의미가 생각할수록 깊다. 그리움은 ‘슬픈 사랑’이다. 보고 싶어 애가 타는 마음이다. 내 의지에 따라 할 수 없는 아쉬움의 표현이고, 가슴 안에 사무친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거기엔 미움과 질투가 들 자리가 없고, 원망과 저주가 스밀 틈이 막혀 있다. 잠깐 스치며 먹은 마음과 달리 오랫동안 쌓여온 따뜻한 정감이다. 함께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 나누길 원해도 그럴 수 없는 예쁜 슬픔이다. 순수하고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사랑이다.

 

「매일미사」가 주는 정보가 의외로 많다. 관심 없이 넘기는 작은 글씨 안에 적잖은 교회의 사목적 메시지가 담겨있다. 처음 지내게 될 「하느님의 말씀 주일」 앞뒤로도 그런 날들이 연결되어 있다.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위해 축복을 빌어주고, 상본에 작은 마음을 담아 전하던 추억들도 그리움의 수첩에 옮겨 놓았다.

 

 

 

「하느님의 말씀 주일」 공식 로고

 

 

「하느님의 말씀 주일」
 
교황청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새로 제정된 「하느님의 말씀 주일」에 관한 세부사항들이 공개되었다. 교황은 이날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하느님 말씀의 거행과 성찰, 전파를 위하여 특별한 미사를 봉헌할 계획이다.
 
교황은 전 세계 가톨릭신자들이 하느님과 말씀에 대한 깊은 감사와 사랑을 드리고, 굳건한 믿음의 증거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날로 지내기를 권고한다. 첫해인 금년에는, 연중 제3주일인 오는 1월 26일에 교서를 통해 정한 바에 따라 ‘하느님 말씀의 거행과 성찰과 전파를 위하여 봉헌하는 날’로 장엄하게 지내게 될 것이다.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살바토레 피지켈라(Salvatore Fisichella) 대주교는 금요일 기자회견에서, 교황의 교서를 인용해 이렇게 설명한다. “여러 공동체들은 저마다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장엄한 날로 지낼 고유한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의 규범적 가치에 회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Aperuit illis)」 참조)
 
서약과 이해를 새롭게 하는 날
 
피지켈라 대주교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주일을 온전히 하느님 말씀에 봉헌하여, 주님과 주님의 백성이 나누는 끊임없는 대화에서 샘솟는, 마르지 않는 부요를 이해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 날은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로 살아가도록 일깨울 수 있는 많은 창의적 계획들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 말씀’을 주제로 2008년에 열렸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에서 제안된 다양한 사목적 계획들이 실행에 옮겨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 제안들은 성경에 관한 공부와 보급, 성찰과 연구 활동을 활발하게 만들고 수준도 향상시킬 목적으로 나온 것들입니다.”
 
대주교는 총회 이후 전 세계에서 시작된 일련의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을 언급한다. 이를 통해 성경을 가지고 기도하고, 다른 언어와 다양한 형식으로 말씀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교황님이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제정한 것은 하느님의 백성으로부터 답지한 수많은 요청에 응답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 교회가 하나로 일치하여 이날을 지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종교일치운동을 위한 의미
 
대주교는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 ‘가톨릭-유다교 간 대화의 날’(1월 17일) 및 「그리스도인 일치 주간」(1월 18일~25일)과 인접해 있어 종교일치운동을 위한 의미도 담고 있음을 강조한다.
 
피지켈라 대주교는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의 다른 계획들과 마찬가지로, 이 주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특징적 로고를 준비했다고 밝힌다. 이 로고는 「하느님의 말씀 주일」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교리교육에 영감을 줄 것이라는 제작 취지를 설명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미사 전례 성서’
 
교황이 「하느님의 말씀 주일」에 미사를 봉헌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전례가 시작될 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모든 세션에서 사용되었던 ‘미사 전례 성서’ 봉정식이 장엄하게 거행될 계획임을 알려주었다. 
[역자 주] ‘미사 전례 성서’ (Lectionary): 미사의 말씀전례 동안 사용되는 성서 독서를 담고 있는 전례서이다. (상세내용 가톨릭대사전 참조)
 
성찬전례의 끝부분에 교황은 40명의 사람들에게 성경을 전해 주는 상징적 예식을 거행하게 된다. 이 40명은 우리들의 다양한 일상의 모습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선발될 것이다. 이어서 주교가 외국인에게, 사제가 교리교사에게, 수도자가 경찰관에게, 각 대륙에서 온 바티칸 주재 대사들이 각급 학교 교사들에게, 가난한 이들의 대표가 언론인에게, 국가 헌병(Gendarme)이 무기수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성경수여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정교회와 복음주의 공동체 대표들도 교황으로부터 성경을 받게 된다.
 
“교황님은 이 성경 수여식을 통해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싶어 하십니다. 교황님이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지내면서 신자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성경을 다른 책들처럼 선반 위에 올려놓고 먼지만 쌓이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깨우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출처: Vatican News, 17 January 2020, 13:46,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vatican-city/news/2020-01/sunday-word-of-god-fisichella-press-conferenc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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