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을 주례한 교황
“형제를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킨 형제의 손에서 무기를 거두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금요일 저녁에 십자가의 길을 주례했다. 이날 십자가의 길 각 처에서는 이미 선정된 열네 가정이 참여하여 자신들이 경험한 고통과 희망에 대한 묵상글을 낭독했다.
전통적으로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성 금요일 저녁에 바쳐온 십자가의 길은, 2019년부터 3년간 중단된 이후 제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이날 십자가의 길을 주례한 교황은, 만 명이 넘는 신자들과 함께 예수님께서 가신 수난과 죽음을 길을 따라가면서 각 처마다 그 뜻을 묵상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콜로세움에서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전통은 그 뿌리가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의 전통은 교황 성 바오로6세가 주례했던 1964년에 시작되었다. 교황 바오로6세 이후의 교황들도 2020년에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중단되기 전까지 매년 이 기도행사를 주례해왔다.
아버지의 집에서 평화롭게 함께 사는 한 가족
이날 십자가의 길은 성가 “아도라무스 테”(Adoramus Te; "당신을 흠숭합니다")로 시작되었다.
교황은 시작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안에 감추어진 권능을 일깨워준다. 가정생활에서 겪는 갖가지 어려움을 돌아보게 하고,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기도였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에게 구원을 선물하셨습니다. 우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모든 민족들을 ‘아버지의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가정 안에 사는 거대한 가족’으로 불러 모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4처를 이동할 때에는 선정된 열네 가정의 가족들이 순서에 따라 십자가를 들고 이동했다. 또한 각 처마다 복음이 봉독되고 열네 가정이 준비한 묵상글이 낭독되었다.
매 처는 교황의 기도로 마무리되었고 성가대는 기도가 끝날 때마다 성가 ‘통고의 성모’(Stabat Mater)의 한 소절을 합창했다.
전쟁의 반대편에 있는 두 가족
십자가의 길 각 처의 묵상글은 가톨릭 자원봉사단체와 관련된 열다섯 가족이 선정되어 준비한 것으로, 전 세계 가정이 일상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시련과 고통을 담고 있었다.
가장 관심을 끈 묵상글은 두 명의 여성이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갔던 제13처였다. 한 여성은 러시아 출신 알비나(Albina)였고, 또 다른 여성 이리나(Irina)는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준비된 묵상글보다 더 큰 울림을 준 것은 침묵이었다.
친구 사이인 두 여성은 로마에서 함께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둘은 같이 십자가를 들고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말없이 주고받은 눈빛이었지만 그 안에는 전쟁 중인 형제들의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함께, 평화와 화해의 꺼질 수 없는 희망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참가자 모두가 평화의 선물을 청하는 기도를 하느님께 바쳤다.
고통의 어둠을 밝히는 복음의 빛
교황은 십자가의 길에 관한 강론이나 묵상을 별도로 인도하지 않음으로써, 선정된 가정의 개인적인 경험을 모두가 나눌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십자가의 길을 끝내면서 바친 마침기도에서 교황은 기쁨과 슬픔, 시련과 희망 속에서도 복음의 빛이 모든 가정을 끊임없이 비추어지기를 빌었다. 또한 용서와 평화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우리의 ‘반항심’을 물리치게 해 주시기를 하느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바쳤다.
주님
저희의 반항심이 당신의 성심을 향하도록 바꾸어주소서
저희 마음속에 평화를 추구하려는 열망이 피어나게 하소서
적개심을 품은 이들이 손을 맞잡고 용서의 기쁨을 맛보게 하소서
형제들을 향해 총검을 들고 있는 이들의 손이 무기를 내려놓고 사랑의 징표를 들게 하소서
미움이 있던 자리에 일치가 꽃피게 하소서
그리스도께서 지고가시는 십자가를 더욱 무겁게 짓누르지 않게 하시고
주님 부활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아멘
[아래 URL을 클릭하면 '십자가의 길'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Vatican News, 15 April 2022, 22:52, 번역 장주영
Pope at Way of the Cross: ‘Disarm the hand of brother raised against brother' - Vatican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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