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은사와 봉사 (교황청의 사순시기 특강)

MonteLuca12 2022. 4. 13. 09:53

봄비는 아직도 내 마음을 들뜨게 한다. 기다림, 설렘 같은 기분 좋은 추억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오늘 새벽엔 관악산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여명이 찾아오는 시간을 조금씩 앞당기면서 얼마 전부터 산봉우리의 윤곽선이 희미하게 보이더니 어제는 제법 분명했었다. 그것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켜보는 습관은 뒤늦게 붙은 것이다.

 

정확하고 실수가 없는 전자기기의 자명종이 울 때쯤이면, 거의 나는 먼저 눈을 뜬 채로 제 놈의 충성심을 점검한다. 어쩌다 막바지 꿈속을 헤매는 날이면 그 놈이 지르는 소리가 귀에 몹시 거슬린다. 눈이 뻑뻑하고 입술이 두툼해지는 것은 달음질에서 지고 심술부리던 어릴 적 못된 심보가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의 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저물어 버린다. 일주일이 지나가나 싶으면 어느새 새 달이 다가온다. 해가 쓱 바뀌고 세월이 훌훌 넘어간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적에 비해 한참 널널해진 지금, 시간은 더 정신없이 흘러간다. 쏜살 같이 흐르는 세월의 강에 몸을 싣고 설렁설렁 사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기시감(旣視感)이 자주 든다. 벌써 성주간, 또 부활이다. 지난 성탄에도 똑 같은 생각을 했다. 일 년에 두 번 거행되는 성야미사의 복사 연습을, 신병교육대 열병식 연습하듯 공들여 하던 어릴 적 기억은 가물가물 사라져간다. 대충대충 넘기는 것 같은 예식에 길들여졌고, 약식과 간소화에 익숙해졌다. 뭐든 짧고 편한 것이 좋다.

 

이태를 거른 끝에 ‘발 씻김’ 예식을 재개한다는 공지에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스쳐 지나갔던 바티칸뉴스의 기사를 다시 꺼내 읽노라니, 대충대충 편하게 살며 붙은 습관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봉사정신에 위배된다는 경고가 열배쯤 확대되어 눈에 확 띈다. 몇 년째 대림과 수난시기 특강을 번역해 올렸던 수고를 슬며시 거르고 지나가려 했던 나태를, 그동안 접어두었던 참회의 목록에 올리고, 수두룩한 시간을 여러 줌 긁어모아 짧지 않은 기사를 부지런히 옮겨 싣는다.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추기경

섬김은 이기심에서 나올 수 없다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 라니에로 칸탈라메사(Raniero Cantalamessa) 추기경은 사도들의 발을 씻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치신 예수님의 봉사와 모범을 주제로, 2022년 다섯 번째 사순시기 특강을 진행했다.

[역자 주]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인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카푸친 작은형제회 (Order of Friars Minor Capuchin, 약칭: O.F.M. Cap.) 출신으로, 2020년 11월 28일 신부에서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지역교회의 대주교로 구성되는 ‘사제추기경’에 비해 사제에서 서임된 추기경은 ‘부제추기경’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일로 추기경에 승격되는 자격은 적어도 사제품을 받아야 하고, 학식과 품행, 신심과 현명한 업무처리 역량이 특출한 남자라야 한다. 교황이 자유로이 선발하며, 아직 주교가 아닌 이들은 추기경으로 서임되면 주교 서품을 받아야 한다.

 
추기경은 교황과 교황청의 관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며 특강을 시작한다. “요한복음이 ‘마지막 만찬’에 관한 구절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내용 대신에, 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는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요한복음은 파스카와 성체성사에 관한 모든 부분에서 성사 그 자체 보다는 성사의 건립과 관련된 사건을, 표징 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더 강조합니다. 요한 사도는 새로운 파스카를 기념하는 예식의 출발지점이 마지막 만찬이 열렸던 다락방(The Upper Room)이 아니라 십자가 위였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십자가상에서 구약의 파스카가 신약의 파스카로 넘어온 것입니다."
 
발 씻김
 
이어서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발 씻김’의 의미에 대한 요한 사도의 해석을 설명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일은, 성체성사가 어떻게 삶으로 옮겨질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제단에서 기념하는 것을 삶 속에서 따라 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애에 담긴 모든 의미를 정리하여 제자들의 기억 속에 새겨놓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몸짓은 예수님의 삶 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발을 씻는 것, 즉 인류를 위한 봉사였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존재하신 분입니다(pre-existence of Christ).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인성을 취하시어 인간들과 함께 사셨습니다(pro-existence of Christ). 즉 당신의 전 생애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바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 37)라는 말씀으로 봉사(디아코니아)의 직분을 제정하시고, 이를 교회 공동체의 근본적 규범과 생활양식의 모델로 설정하셨습니다. 성체성사를 설립하실 때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며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교리는 은사가 전적으로 봉사를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특별한 은사는 모두 ‘공동선’을 위하여 주어진다고 단언합니다. ‘저마다 받은 은사(카리스마)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디아코니아)하십시오.’(1베드 4, 10) 이 말씀은 은사와 사목, 은사와 봉사라는 두 개의 조합이 언제나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교회가 받은 은사는 봉사입니다.”
 
봉사 정신
 
복음은 봉사라는 용어를 상점 주인이 고객에게 봉사하는 방식과 같은 세속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을 배제하거나 격에 맞지 않는 것으로 평가절하하지는 않는다고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말한다. 다만 그런 의미와의 차이는 봉사하는 이유와 그것이 수행되는 내적 태도에 있다고 설명한다. “봉사를 덕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덕행에서 우러나오는 행위입니다. 베푸는 마음에서 봉사는 시작됩니다. 즉 그리스도교적 사랑인 아가페, 자신의 이익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선익(善益)을 우선시하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남들에게 베푸는 마음입니다.”
 
“무상으로 베푼다는 의미 외에, 봉사는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사랑과 겸손이 복음적 봉사를 형성하는 두 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봉사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실 정도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순간부터 사도들의 발을 씻기 위해 무릎을 꿇을 때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영적인 분별력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들을 섬기고 있는지, 아니면 그들이 우리의 목적 실현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봉사하겠다는 의지를 영적인 분별력으로 가려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기꺼이 나서서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최선을 다해 피하려고 애쓰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또한 빛나고 품위 있는 봉사는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고, 인정받지 못하는 미천한 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그들을 위하여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봉사정신의 반대는 지배하고 싶은 욕망입니다.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습성, 즉 권위주의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습관과 편안함에 도취되는 것입니다. 이 또한 봉사의 정신과 상반되는 나태한 정신 상태입니다. 이런 악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봉사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의 기쁨을 얻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영적인 봉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섬긴다는 것은,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는’(2코린 5, 15)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자들에게는 ‘자기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법은 없다’라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1베드 5, 3)”
 
“우리는 하느님의 행동 방식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을 때 자신의 엄위하신 신성이 손상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영광을 감추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사람들의 무례를 불러일으키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단순한 삶을 사셨습니다. 단순함은 언제나 복음으로 돌아가는 진정한 출발점이자 징표였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사제들이 받은 성소의 전형(典型)입니다. 사제는 영적 봉사에 부름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느님과 신자들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발 씻김의 의미를 설명한 후,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요한 13,17)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아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성체성사가 우리에게 촉구하는 섬김과 나눔의 삶을 실천한다면 우리도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체는 축성되고, 영해지고, 공경되어야 할 신비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본받고 따라해야 할 신비인 것입니다.”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 라니에로 칸탈라메사(Raniero Cantalamessa) 추기경은 사순 피정 특강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우리가 직무 수행을 위하여 받은 은사를 묵혀 두지 말고 십분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는 발을 씻어주고 형제자매들을 섬기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는 은사를 함께 받았기 때문입니다."

출처: Vatican News, 08 April 2022, 11:42, 번역 장주영

Cardinal Cantalamessa: Service does not consist in self-seeking - Vatican News

'교황님의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 금요일에 바친 '십자가의 길'  (0) 2022.04.16
교황님의 '발 씻김' 예식  (0) 2022.04.15
2022년 4월의 기도지향  (0) 2022.04.06
2022년 3월의 기도지향  (0) 2022.03.09
2022년 2월의 기도지향  (0) 2022.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