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와 수도원이 운영하는 교육센터 사이에 경계를 짓는 철제 울타리가 쳐져 있다. 야트막한 울타리는 영역을 나누는 기능보다는, 그 밑에 심어진 화초의 넝쿨을 안아주기 위한 예쁜 지지대의 역할을 더 열심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그 새댁을 처음 본 것은 새 집에 이사하고 처음 맞은 성탄의 성야미사였다. 한 마당 안에 성당을 두고 있는 집이 어디에 또 있을까? 그런 행복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첨례를 지키러 온 앳된 엄마는 그 수도원 성당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쩌다 만난 이웃일 뿐이다. 약간의 우수가 담긴, 수줍음 가득한 눈빛이 그녀가 내게 전한 인사의 전부였고, 미사 중에 만났다는 특별한 친근감 때문에 나는 그저 목례로 답했을 뿐, 한마디 말도 주고받은 적이 없다. 정을 많이 나누며 몇 년간 함께 살았던 내 조카딸 또래의 그 젊은 부인을, 수도원 성당이 아닌 본당에서, 간신히 어스름이 걷힌 시간에 마지막으로 만났다.
나이 들면서 눈물이 헤퍼지는 변화를 감출 재간이 없다.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의 아래윗집에 살았지만 서로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그녀의 죽음이 왜 이렇게 내 가슴을 미어지게 만드는 것일까? 코로나바이러스에 점령당한 성당엔, 몇몇 가족과 연령회 봉사자들 외에는 오직 우리 부부만의 이 젊은 연령을 위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빌고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먼 그녀의 남편, 아이 티를 벗지 못한 두 딸과의 이별을 너무도 애처롭게 바라보는 눈에서 흘러내리는 액체가, 마비된 듯 굳어버린 가슴을 에는 고통을 겨우겨우 누그러뜨린다.
다 정리하고 떠날 수 있을까? 아등바등 기를 써도 소용이 없다는 진리를 터득한 것도 같다. 포기하자고 꾀는 말이 아니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찾아낸 구실도 아니다. 열심히 노력하다 해결하지 못한 것은 있는 그대로 두고 갈 수 밖에 없는 그 순간을 미리 보는 것이다. 수많은 사연을 가슴에 품고 하늘로 오르신 성모님을 생각한다.
성모칠고(聖母七苦)! 개정된 공식용어 ‘고통의 성모님’ 보다 어려서부터 들은 이 말이 왠지 더 친근하다. 성모님을 특별히 좋아하시는 교황님께서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사도 순방을 마치셨다. 나흘간의 짧은 순방일정은 슬로바키아 ‘칠고의 성모’ 대성당에서 마무리되었다. 오십년을 다 못 채우고 떠난 수산나를 기억하며 칠고의 성모님께 나의 남은 삶을 의탁한다. 성모님처럼 고통과 슬픔을 담아둘 보따리를 준비하여 하나씩 챙겨둘 생각이다.
고통의 성모 마리아 대한 신심
슬로바키아 사도 순방 마지막 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칠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상을 순례하기 위해 샤슈틴(Šaštín) 시를 방문한다.
교황은 지난 9월 5일, 주일 삼종기도를 바치면서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부다페스트와 슬로바키아 사도적 순방 출발인사를 하면서, 이번 슬로바키아 방문은, 이 나라의 수호성인인 ‘칠고의 성모’를 방문하여 기도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슬로바키아서는 ‘칠고의 성모’라고 불리는 고통의 성모님에 대한 대중적 신심이 매우 깊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되신 동정 성모님께 대한 공경심이 각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교황이 사도적 방문을 떠나기 전과 후에 언제나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찾아 ‘로마백성의 구원이신 성모님’(Salus Populi Romani) 성화 앞에서 기도하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다.
성지의 역사
샤슈틴에 있는 ‘칠고의 성모’ 성지의 역사는 수세기 전인 15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자신의 아내를 심하게 구박하는 지역 귀족이 있었다. 그의 아내 안젤리카 바키치 백작부인은 남편이 마음을 바꾸어 바른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여러 해 동안 성도님께 기도했다.
어느 날 함께 마차를 타고 가던 중 둘이 말다툼을 벌이게 되었고, 결국 남편은 자기 아내를 밀어내어 길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날 백작부인은 성모님께 기도하며 남편이 마음을 바꿀 경우 성모님의 성상을 봉헌하겠다고 약속한다. 이 기도를 바친 이후 귀족은 마음을 바꾸고 그날부터 선량한 남편으로 아내에게 돌아와 용서를 빌었다.
복되신 동정 성모님의 성상은 백작부인이 마차에서 떨어졌던 바로 그 길가에 세워졌다. 그 곳은 순례 장소로 인기를 얻게 되었고, 얼마 후에 그 자리에 작은 성당이 지어졌다.
샤슈틴에 있는 ‘칠고의 성모 대성당’은 슬로바키아인들이 특별한 신심을 가지고 주보로 모시고 있는 칠고의 성모님께 봉헌된 국립성지이다. 이 성당의 축성식은 마리아 테레사 황후와 그녀의 남편 프란츠 1세 황제(로레인의 프란츠 슈테판)가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이 국립성지는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준 대성전’(Minor Basilica)으로 지정되었다.
교황의 성지 방문 미디어 책임자인 미로슬라프 야낙(Miroslav Janak)은 성지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칠고의 성모님께 봉헌된 이 성지를 방문한 이들의 신앙체험과 기적에 관한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순례자들
야낙은 이 성지를 찾아오는 순례자들이 많다며 설명을 이어간다. "매년 약 200개의 국내 순례단이 샤슈틴 성지를 찾아옵니다. 해외에서 오는 순례단은 40개 정도 됩니다. 2019년에는 스페인의 순례단이 왔었고, 심지어 멀리 멕시코에서도 온 순례단도 있었습니다. 매년 거의 20만 명의 순례자가 이곳을 찾습니다."
교황 방문
이번 교황의 사도적 방문에 관해서 미디어 책임자는 이같이 말한다. “교황님께서 슬로바키아에 오시고 여기 성지를 방문하신 것은 말할 나위 없이 큰 영광입니다. 한 세대에 한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는 이번 교황의 사도적 방문이 슬로바키아의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슬로바키아는 훌륭한 나라입니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께서 오늘 슬로바키아를 방문하신다면 저희는 단합된 나라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없는 형편입니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시련을 겪으면서 나라가 양극화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백신접종 반대운동 같은 쟁점들로 인해 국민들 간의 분열이 심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황님의 방문이 평화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정말 교황님께서 우리나라에 평화를 전해주실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책임자인 미로슬라프 야낙은 많은 국민들이 현재의 분열상황을 걱정하고 있다고 밝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국민적 갈등이 해소되기 위하여 지도력이 발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모님께 국민 모두가 하나로 일치되도록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인 9월 15일에 교황님께서 이곳을 방문하시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모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란 우리의 바람과 맞닿아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Vatican News, 14 September 2021, 16:00, 번역 장주영
Pope in Slovakia: Devotion to Our Lady of Sorrows - Vatican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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