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새벽 미사 강론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방학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신부님의 작별인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신앙적 교훈은 어느 강론보다도 풍성했다. 단지 사제라는 이유만으로 받은 사랑이, 교회의 본산인 로마에서는 눈곱만큼도 맛볼 수 없는 과분한 은총이었다고 감사하는 인사였다.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요리보다 소박한 김치찌개 맛이 주는 행복이 더 컸다는 실토도 끼어있었다. 매일 미사조차 봉헌하기 힘든 처지가 사제생활에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깊게 고뇌하는 모습이 엿보였고, 하느님을 깊이 탐구하면서 오히려 기본적인 기도생활과 멀어지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대한 회의가 짙게 묻어나는 고백이 담겨있었다. 기도가 말라버린 신앙은 하느님 보시기에 어떤 모양일까?
얼마 전, 만나기 힘든 분들과 제법 긴 시간에 걸쳐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분들이 고가의 자산을 구매하는 일에 대한 걱정이 컸고, 결국 내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관상 봉쇄 수도원’의 오르간은 악덕고용주(?)를 만나 끔찍한 혹사를 당해왔다는 사실이 대화과정에서 밝혀졌다. 하루 5시간씩, 한 번도 거르지 않고 30년을 일해 온 오르간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은, 내가 소개한 전문가의 눈에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분명했다. 그 오르간의 혹독한 일생이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도였다. 그의 주인들은 그토록 열심히 기도하는 분들이다. 그분들의 삶은 오롯이 주님께 봉헌된 것이고 하느님께서 축복하신 숭고한 것이다. 그분들의 기도는 분향과 같고 그들이 쳐든 손은 저녁제사 같은 것이 확실하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일으켰던 감동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것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선물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그렇게 기도해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믿게 되었다. 그것은 내게 연결되는 은총의 관로(管路)가 되고, 생명의 물을 길어 올리는 은혜의 샘이 된다.
‘봉쇄’된 좁은 공간에서 한없는 자유를 즐기는 분들, ‘관상’의 고요 속에서 끝없이 재잘대며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불현듯 깨닫는다. 그곳에서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믿음과 사랑이 흠뻑 배어난다. 나는 그토록 거룩한 삶에 대한 찬사를, 이렇게 오금저리도록 어쭙잖은 말로 표현했다. “수녀님들의 기도가, 교회와 사람들의 빈궁(貧窮)한 세상살이를 지탱하는 힘이라 믿습니다.”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베트남 수녀들
2012년 베트남의 한센병 요양소는 폐쇄되었다. 그 자리에 해변 휴양시설이 건립될 계획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수녀들은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성모 마리아 방문 수녀회」 ㈜ 소속의 수녀들이 베트남 해안 도시 다낭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봉사를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
[역자 주] 성모 마리아 방문 수녀회 (라틴어: Ordo Visitationis Beatissimae Mariae Virginis) 또는 성모 방문회, 방문 수녀회, 성모 마리아 방문 봉쇄 수녀회는 여자 수도회 가운데 하나이다. 1610년 6월 6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와 성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Jane Frences de Chantal) 수녀에 의해 프랑스 안시에서 창설되었다.
그들의 봉사는 베트남 전쟁이 끝난 이후 1980년부터 시작되었다. 1968년에 미국 선교사 부부가 한센병 환자 격리시설로 이어지는 길을 닦은 것이, 이 일을 하게 된 시발점이었다.
한센병 환자 수용시설인 「행복한 천국」(Happy Haven)은 설립자가 건강문제로 인하여 베트남을 떠나고 난 후인 1974년에 폐쇄되었다.
환자들과 똑같은 운명에 처한 그곳의 주민들도 스스로를 지켜내야 했다. 그들은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주변의 숲에서 과일과 채소를 채취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평복을 입은 수녀들
「성모 마리아 방문 수녀회」 수녀들이 이곳에 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수녀들은 평범한 사람으로 위장하여, 「행복한 천국」에 수용되었던 이들에게 줄 옷과 음식을 구해서 가지고 왔다. 또한 그곳에 살고 있던 100여명의 가톨릭 신자들과 성찬예식을 거행했다.
베트남 정부가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사제들이 나서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그들은 종교적인 정체성을 숨긴 상태에서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센병 환자들은 2012년까지 그곳에서 30년 동안 살았지만, 자기들의 보금자리였던 산비탈에서 강제로 쫓겨날 처지에 내몰리게 되었던 것이다.
다낭시 당국은 한센병 환자들이 살던 자리에 1억3천만 달러를 투자하여 리조트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지방 정부는 리엔찌에우(Lien Chieu)에 집을 지어 이곳 주민들을 이주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투자자와 주변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사이의 보상에 관한 분쟁으로 인하여 리조트 프로젝트의 터파기는 아직도 시작되지 못했다.
봉사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성모 마리아 방문 수녀회」 수녀들의 봉사는 이 한센병 환자 수용시설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왔다.
그러나 많은 주민들이 이곳을 떠나 뿔뿔이 흩어지면서, 수녀들과의 연락이 끊어지고 있다.
다낭 분원의 원장인 마리아 테이 로이 (Mary Nguyen Thi Loi) 수녀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 News)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맹이고 휴대전화 보급률이 낮아 그들을 추적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토로한다.
로이 수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현재 여러 지역에서 100명의 한센병 환자와 그들의 친척들로 구성된 23가구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이들에게 베푸는 위로
수녀원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 돈과 음식, 옷과 의약품, 그리고 장학금을 제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말을 원장 수녀는 덧붙인다.
“우리는 그들을 위로할 뿐 아니라, 그들과 그 가족들이 필요한 것을 나눔으로써 그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의 형제자매들이기 때문입니다.”
수녀회의 사목적 소임은 미국에 기반을 둔 비영리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 단체의 이름은 ‘베트남 한센병 환자들의 친구’이다.
이것이 한센병 환자 수용시설인 「행복한 천국」의 폐쇄에도 불구하고 「성모 마리아 방문 수녀회」 수녀들이 지금까지 이어온 봉사의 소임을 지켜가고 있는 이유이다. 그들은 아직도 한센병 환자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영적지원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출처: Vatican News, 16 March 2021, 11:56, 번역 장주영
www.vaticannews.va/en/church/news/2021-03/vietnam-visitation-sisters-helping-leprosy-sufferer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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