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성탄은 새로운 삶의 시발점

MonteLuca12 2020. 12. 27. 10:10

외래어가 담고 있는 의미를 우리글로 옮기는 일은 늘 부담스럽다. 중학교 첫 학기에 배웠던 가장 기초적인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에 부딪혀 진땀을 흘리는 경우도 이따금 생긴다. ‘목숨’과 ‘삶’을 뜻하는 영어의 단어가 같다. 같은 문단 안에서도 한 단어 ‘life’를 두 가지 말로 번역할 때가 있다. 그래야 해석한 의미가 살아난다는 구실을 앞세워 긴 망설임의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먼 나라, 어디 있을지도 모를 필자의 진의는 여기서 잘못 전달된 위기를 맞는다.

 

늘 만나는 말이지만, 성탄시기가 되면 더 자주 눈에 띄는 단어가 그것이다. 그 앞에는 대체로 ‘새’라는 관형사가 붙는다. 새롭다는 말이 지닌 뜻을 새롭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에 우리의 감정이 무뎌지는 습성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적에 그토록 가슴을 설레게 했던 명절이나 잔치가, 나이 들어가면서 시큰둥해진 예를 어렵지 않게 들 수 있다. 심장의 박동수를 한껏 끌어 올리게 만들던 만남이,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고 시들해져버리는 경험도 그리 희귀한 축에 속하지 못한다.

 

생명은 삶을 구성하는 시계열의 요소이다. 생명으로 이어져있는 인생 경로가 바로 삶인 것이다. 적어도 시간적으로는 항상 새로운 순간을 맞고 있지만 새롭다고 느끼지 못하며 산다. 날도 달도, 계절도 해(年)도 그런 습성을 깨고 싶어 만들어낸 세월의 매듭이 아닌가 싶다.

 

자연은 시간의 궤적 위에 지어진 매듭을 더듬고 방향을 틀어 다시 돌아간다. 규칙적이지만 새로워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나는 방향을 틀지 못하고 한쪽으로 가고 있다. 육신의 변화를 따라 영혼도 늙어간다. 그래도 금년에 맞은 성탄이 여느 때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챘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새 삶’에 대한 의문에 눈을 뜰 기회를 얻었다. “오늘, 바로 이 자리, 생명으로 이어지는 삶의 특정 지점에서, 당신이 느끼는 ‘새로운’ 것이란 무엇인가?” 언제나 귓전을 맴돌던 질문이 오늘에서야 가슴을 파고든다.

 

구유의 아기 예수 (2015년 베드로대성당의 성탄전야미사, 사진 출처: Vatican News)

2020년 성탄 - “어둠을 밝히는 가장 밝은 희망의 빛”
 
예수님의 성탄은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이 드리운 두려움과 불확실성의 그림자로 인해 어두워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희망의 신호이자 메시지이다. “아무도 혼자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라는 주제로 내일을 생각하는 교회의 지도자들과 자선단체 대표들의 성탄축하 메시지를 전한다.
 
오늘은 ‘바티칸라디오’와 ‘바티칸뉴스’의 청취자에게 전하는 교황청 ‘홍보를 위한 교황청 부서’, 파올로 루피니 장관의 성탄인사를 싣는다. 이 인사를 통해 장관은 세상에 희망과 구원의 빛을 가져다주시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한다.
 
[역자 주]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7월 5일 교황청 ‘홍보를 위한 부서’(Dicastery for Communication) 장관에 이탈리아의 언론인 파올로 루피니(Paolo Ruffini)를 임명했다. 이로써 교황청 역사상 처음으로 주교와 추기경 등 고위 성직자가 맡아온 교황청 주요부서의 장관에 평신도가 임명되는 기록을 남겼다.
 
장관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성탄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갔다고 원망하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사실 지금은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상황이다.
 
그는 아마도 우리가 오래전부터 잘못된 길을 걸어왔는지 모른다면서, 우리 자신이 ‘기억을 잃어버린 세상’의 일부가 아닌지 성찰하자고 말한다.
 
사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팬데믹’
 
루피니 장관은 창궐하는 전염병이 우리로 하여금 사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과 사라져가는 것들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며,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는 일이라고 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사건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자고 우리를 초대한다. 지상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존재는 무엇인가,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찾고 있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깊게 성찰해보자는 제안이다.
 
“이웃들을 위하여도,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도 가장 좋은 소망은 나 대신에 우리를 재발견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기보다는 앞을 내다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장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맞이한 성탄이 우리에게 만들어준 소중한 기회를 헛되이 흘려버리지 맙시다.”
 
아기 예수님과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은 미래의 약속
 
루피니 장관은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경축하는 오늘,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서 드러나는 그분의 모습을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그 모습은 우리가 등을 돌리지 말아야 하는 미래의 약속이며,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의 징표입니다.”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다시 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관점을 바꾸는 방법을 아기 예수에게서 배우도록 합시다. 그런 노력은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아무도 혼자서는 구원받지 못한다
 
“올해의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모든 것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믿거나,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스스로 벽을 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합니다.”
 
“모두가 함께할 때에만 우리가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고통의 원천은 분열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일치와 단결은 두려움을 쉽게 몰아내줄 것입니다. 큰 은총을 가져오신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성탄의 기쁨을 모두가 함께 나누시기를 빕니다. 이천년 전에 일어났던 성탄의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Vatican News, 24 December 2020, 16:37, 번역 장주영

www.vaticannews.va/en/church/news/2020-12/christmas-2020-message-paolo-ruffini-vatican-prefect.html

'교황님의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년 1월의 기도지향  (0) 2021.01.07
영혼을 위한 백신  (0) 2021.01.03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소서  (0) 2020.12.22
교황님의 사제 서품 51주년  (0) 2020.12.15
신작 영화 '사제'(Priest)  (0) 2020.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