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기적의 메달 성모상

MonteLuca12 2020. 11. 12. 11:52

실종된 계절이 교묘히 존재를 드러낸다. 춘추와 추동의 개념이 사라진 세상에 끈질기게 남아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자신의 방문을 알린다. 사계(四季)를 지켜주려는 짓궂은 천사의 손짓인지, 시샘으로 볼이 퉁퉁 부어오른 계절의 신이 부리는 심술인지 가려볼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콧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한쪽에서 시작한 것이 다른 쪽에까지 영역을 넓혔다. 양쪽에서 흘러내린 고점도의 액체가 입술을 타고 움직여 가운데에서 만난다. 턱밑까지 내려가 길이 막혀 다시 양쪽으로 갈라지는 것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게 버티고 있는 얇은 덮게 때문이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겨우 손에 집힌 티슈 한 장이 유난히 얇고 작다. 단칼에 흠뻑 젖어 꿀쩍거리는 놈은 다시 돌아간 호주머니를 적시고 있다. 콧속에 들어붙어 있는 고형체가 마음에 걸려 후벼 파던 결벽증이 나설 처지가 못 된다. 어쩔 도리가 없어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지들 멋대로 놀게 내맡겨둔다. 그러고 나니 거짓말처럼 재채기가 멈춘다. 살짝 경련을 일으키던 겨드랑이 쪽 근육이 안정을 되찾는다.

 

성체가 놓였던 손바닥에 친구하던 습관도 오늘은 거르고 지나간다. 성체를 모시기 위하여 ‘코로나 방제용 방패’를 걷어버리던 고집도 꺾었다. 끈적거리고 미끈거리는 잼 같은 물질이 성체에 듬뿍 발라진다. 찝찔한 맛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폐병을 앓던 환자가 기침 때문에 뱉어낸 성체를 대신 영하던 신부님을 생각하며 콧물로 범벅이 된 마스크 속의 내 모습을 까맣게 잊는다.

 

지난 월요일 그분께서 조용히 하느님께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90번째 생신을 보름 앞두고 떠나셨다.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린 것이 여러해 전 일이다. 이제는 큰절로 인사를 올릴 분이 남아계시지 않다. 30대 젊은 미남 신부님을 나는 존경했다. 신부님은 무뚝뚝한 표정 속에 아주 따뜻한 사랑을 감추고 계셨다. 나는 그분이 성인이라고 확신할만한 경험을 신부님과 공유한 적이 있다. 마스크를 믿고 여기저기서 한없이 흘러내리는 물기를 닦아내지 않았다. 흠뻑 젖어버린 엉성한 천 그릇에 한 움큼의 사랑을 담아 신부님께 돌려드린다.

 

성모님과 성녀 캐서린 라부레

순례 중인 기적의 메달 성모상
 
교황이 기적의 메달 성모님의 축복식을 집전하였다. 금년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프랑스 파리의 캐서린 라부레 수녀에게 나타나신지 190년이 되는 해이다.
 
교황은 어제(수요일) 일반알현이 끝날 무렵 ‘기적의 메달회’가 모셔온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동상을 축복했다. ‘기적의 메달회’를 설립한 토마스 마브릭 신부가 이끄는 소규모 대표단이 성모상을 모시고 교황을 알현하는 자리였다. 토마스 마브릭 신부는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제선교회 총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1625년 프랑스에서 성 빈첸시오 드 폴에 의해 설립된 이 선교 수도회는 보도 자료를 통해, 대표단이 성모상을 모시고 이탈리아의 전역을 순례하고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전 세계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고 겪고 있고, 모든 대륙의 국가들이 긴장 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성모님의 순례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선포하는 여정이라고 말했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의 젊은 수녀인 가타리나 라부레는, 1830년 파리에 있는 수녀회 모원에서 자신에게 발현하신 복되신 성모님으로부터 들은 세 가지의 말씀을 전한다. 성모님께서는 프랑스의 불행과 세계적인 재앙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위해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총이 주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시켜주셨다고 말한다. 성모님은 성녀에게 기적의 메달을 만들 것을 부탁하면서 이 메달을 지닌 사람들은 모두가 큰 은총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발표한 성명은 전 세계적으로 깊어지는 불안과 증가하는 빈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돌아오는 주일(11월 15일)에 지내게 될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앞두고 발표된 교황의 담화를 되새기게 만든다.㈜ 이 담화에서 교황은, 전염병의 대유행이 몰고 온 자유의 제한, 일자리 상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격리, 일상적인 대인관계 축소 등으로 인해 우리는 더욱 보잘것없고 나약한 존재라고 느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서로가 돕고 존중할 수 있는 새로운 형제애가 얼마나 필요한지 깨닫게 되는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었다고 말한다.
 
[역자 주]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4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2020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일), “가난한 이에게 네 손길을 뻗어라”(집회 7,32)
http://pds.catholic.or.kr/pdsm/bbs_view.asp?menu=4800&id=179641
 
이 성명은 빈첸시안들이 성모님을 모시고 순례하면서 수세기를 걸쳐 내려오는 영성을 되새기려 한다는 뜻을 밝힌다. 가난한 이들을 돌봄으로써 하느님을 섬기라는 부르심을 충실히 받들어 주님의 제단 앞으로 나오라고 부르시는 성모님의 초대에 흔연히 따라 나섰다고 말한다.

출처: Vatican News, 11 November 2020, 11:42, 번역 장주영

www.vaticannews.va/en/pope/news/2020-11/pope-francis-blesses-statue-miraculous-medal-audience-vincenti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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