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기도 네트워크

「마음의 길」 7단계

MonteLuca12 2020. 3. 1. 10:18

 

주님을 따라 우리의 삶을 봉헌하자

 

♡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로마 8, 26)

 

♡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마르 12, 43~44)

 

♡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루카 22, 19)

 

♡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 38)

 

♡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로마 12, 1)

 

♡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히브 10, 9)

 

♡ 받아주소서, 주님. 저의 모든 자유와 저의 기억과 지성, 저의 모든 의지와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받아주소서. 당신이 이것들을 제게 주셨습니다. 주님, 이 모두를 돌려드립니다. 모두가 당신 것이오니 당신 뜻대로 처리하소서. 제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으로 저는 족하옵니다. (성 이냐시오 영신수련 234항)

 

[역자 알림] 일부 인용문의 출처를 찾지 못하여 문헌과 저자의 이름은 외래어 그대로 표기하였고 인용문도 역자가 임의로 번역하였음을 밝힙니다.

그리스도께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의 삶을 내어주게 됩니다. 우리의 약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이웃들에게 유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에게 사랑받고 선택되어 그분이 우리 안에 살고 계신다는 것을 앎으로써 우리가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자존감은 우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하게 만듭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것에 대해 응답할 힘을 얻어 사도직에 헌신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서 작용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기심과 나태함을 이겨내고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자렛의 성모님처럼 우리도 당신의 부르심에 순응하여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우리가 참여해주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내가 바친 제물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것은 다른 이들을 위해서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성부께서 우리의 제물을 당신 아드님의 성심과 삶에 일치시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아드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세상이 겪는 고통에 가까이 다가갈 때, 그분이 하신 것처럼 그에 대한 응답을 주려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께 자신을 봉헌하는 기도를 바침으로써 성자 그리스도와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동시에 우리는 성령께 바치는 겸손한 기도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분의 손길을 방해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는 특별한 방법으로 영감을 받고 영적 자양분을 공급받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당신 자신을 아버지께 바치신 완전한 봉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봉헌의 본보기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기

 

이 사랑에 대한 응답은 우리를 그분께 끌려가게 만듭니다. 성체성사의 한없는 높이와 넓이, 그리고 그 끝없는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되면 우리는 기꺼이 자신을 봉헌하게 됩니다.

 

감사의 제사, 성체성사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에서 나오는 빛나는 사랑은 오직 그분의 인생여정을 끝까지 따라가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워낙 강렬하여 말로 다 형용하기가 어려운 사랑이 흘러넘칩니다. 교회가 용기 있게 나서서 선포하는 것이 바로 이 사랑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오셨는지를 알리고 성체성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Robert Scholtus 신부)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여기에 모든 것이 다 있다.

 

성체성사는 ‘끝까지 계속되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 사랑은 측량할 수 없을만큼 큰 것이며 예수님을 부활시킨 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길로 우리를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 57)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로 우리와 깊게 일치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와 하나가 되고자 하십니다. 시리아의 성 에프렘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분은 빵이 살아있는 당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빵을 당신 자신과 성령으로 채우셨습니다. (중략)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받아먹는 사람은 불과 성령을 받아 모시는 것입니다. (중략) 모든 이가 성령과 함께 이 몸을 받아먹어야 합니다. 이는 내 몸입니다. 이를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를 선물로 내어놓으심으로써 우리 안에서 성령의 특은이 불어나도록 해 주셨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미 성령을 받은 우리는 견진성사로 성령특은의 날인을 받았습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는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이것은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부활에 담긴 신비입니다. 부활의 신비는 이미 이 세상 깊숙이 자리하고 있고 오늘도 우리는 이 신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왜 우리에게 당신과의 통교를 위한 엄청난 선물을 주시려는 걸까요? 당신의 성령과 우리를 이어주시려는 뜻이 무엇일까요? 그분은 우리가 당신을 닮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능력을 우리에게 전수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미 와있는 하느님의 왕국을 넓히기 위하여 우리의 삶을 봉헌하도록 이끄시려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도직 '교황의 전 세계 기도 네트워크’가 170년 넘게 매일 아침 그리스도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우리를 초대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냐시오 영신수련 91~100항) 아침 봉헌 기도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저 여기 있습니다. 제게 맡겨 주십시오!” 매일 아침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사랑의 선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모순 덩어리이고 수많은 한계와 취약점을 안고 있는 제가, 저의 삶을 송두리째 바쳐 하느님 왕국 건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응답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봉헌을 통해 저는 성체성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그 봉헌은 세상 속에 있는 교회 안에서 봉사함으로써 주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 헌신의 삶은 인류를 위해 준비하신 하느님 사랑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찬례의 제물로 봉헌된 삶을 사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님께서 봉헌하신 사랑의 요약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출구가 없는 막다른 죽음의 길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부활과 풍요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 모두가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사랑의 잔치에 데려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영적 투쟁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가며 예수님께서 하셨던 그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영적투쟁에 뛰어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이었습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요한 17, 15) 여기에 예수님께 대한 믿음의 기준이 제시됩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요한 13, 16) 우리 모두는 악을 저지르고 거짓말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생명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성부로부터 발하신 진리의 성령을 보내시어, 원수의 실체를 밝혀주시고 생명을 선택하도록 우리를 일깨워 주십니다.

 

오늘날 세상 속의 교회에 맡겨진 사명을 수행하는데 동참하기 위해,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고 그분을 따라 봉사에 헌신하는 것은 우리를 들뜨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교회 안에 도사리고 있는 도전은 물론, 그 밖의 많은 어려움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도들을 생각합니다. 예수성심과 일치했던 사도들은 예수님과 갈릴래아 호숫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 길은 꽃이 만발한 녹색의 목초지 사이로 나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그 길을 걷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호숫가에서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 안에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베드로 사도처럼 예수님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은 고통과 십자가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노력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치 마술지팡이를 휘두른 것처럼, 우리가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단번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도들의 메시아였던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분입니다. 그분은 거친 길을 평탄하게 하고 산과 언덕을 낮게 만들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아무도 고통 없이는 사랑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 이 말씀은 반드시 고통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여 제물로 봉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헌신은 우리를 재계(齋戒)의 생활로 인도하고 이웃들에 대하여 이기적인 자세를 버리게 만듭니다. 언제나 헌신을 통해서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을 통하여, 때로는 십자가를 지고, 또 자기 자신을 버림으로써 그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 33)

 

훈련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려는 원의를 가지고 미사에 참례하십시오. 말씀전례에서 그리스도께서 마치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독서와 복음을 들으십시오. 성찬전례의 축문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와 같은 느낌으로 들으십시오.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는 성변화 시간에는 최후의 만찬 현장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영성체를 할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당신에게 음식을 주신다고 생각하십시오, 마침예식 전의 마지막 기도와 강복을 통해 당신은 복음화에 헌신하도록 파견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출처: https://www.popesprayer.va/way-of-the-heart/ [번역: 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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