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중심 변혁(Customer Driven Transformation)”이란 캐치프레이즈가 퍽 인상적이었다. ‘공급자 시장’의 우월적 지위를 만끽하던 우리나라 기업들이 고객의 가치에 눈을 돌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 세계 최고의 글로벌 기업이 내걸었던 구호다. 이후 우리의 상업광고에 “고객은 왕”, “고객만족” 등의 문구가 담기기 시작할 때까지 그리 오랜 기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지금은 고객 개개인의 취향과 구매습성을 분석하여 찾아가는 형태로 시장상황이 바뀌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영업이 시장 대부분을 삼켜버린 세상에까지 이끌려왔다. 우리의 의견을 묻지 않고 변해버린 세상의 모습이다.
교회 출판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이북’(ebook)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래도 책은 종이지요.” 그 주장에 반기들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저 전자책이 주는 편의에 관해 내가 느끼는 바를 알려주고 싶은 것이 많을 뿐이다. 고가의 인쇄기나 관련 시설, 전통방식의 책을 제작하고 출판하기 위해 구성된 조직과 직원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답이라 이해한다. 단지 그들의 머릿속에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고려가 아예 빠져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오지랖 넓다는 핀잔을 들을만한 참견이다.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일이건,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이건 모두 대상과 방법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그리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교황님의 성탄하례식 인사말씀이 ‘교회의 변혁’에 관한 것이다. 고객 중심의 변화를 추진하고 계신다. ‘다시 태어남’이란 의미 안에서 ‘성탄’과 ‘변화’가 통하고 있다. 내용이 많아 두 번에 나누어 싣는다.
“복음화를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나라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풍부함, 복잡함, 역동성을 갖는 복음화의 실체를 포기하려는 모든 시도, 곧 복음화를 부분적으로 혹은 단편적으로 정의하는 모든 시도는 결국 복음화를 메마르게 하고 왜곡하기까지 할 뿐입니다.” (복음의 기쁨 176항)
“그분의 구원은 사회적 차원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개별 인간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들까지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모든 사람 안에서 활동하신다고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모든 인간 환경과 모든 사회적 유대를 꿰뚫으려 하신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책 178항)
섬기기 위한 교황청의 변화
교황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성탄하례식'을 통해 교황청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티칸의 구조변화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신설된 省(dicastery)의 설치 필요성과 목표에 관해 설명했다. 경직성과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복음화 되지 못한 세상에 ‘기쁜소식’을 잘 전하기 위해 교황청의 변화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교황청의 이런 조치들은 변화하는 세상의 유행을 따라서 한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변화를 위한 변화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관점에서 발전하고 성장합니다. 성경조차도 ‘출발하는 여정, 다시 시작하는 여정’인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성인이 되신 뉴먼 추기경은 ‘변화’의 진정한 의미는 ‘전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전과 타성
바티칸의 클레멘스 홀에서 교황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교황청 임직원들과 성탄인사를 나누었다. 교황은 담화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변화의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변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싶은 타성에 안주하기 보다는 냉철한 분별력과 용기를 가지고 현재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건강한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단지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을 변화라 생각하고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유명한 이탈리아 소설에서 읽은 불가사의한 표현이 생각납니다. '모든 것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주세페 토마시 람페두사의 소설 「The Leopard」 중에서)”
기억과 새로움
교황은 교황청의 개혁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마치 이전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교황청의 복잡한 역사를 통해 해내려온 모든 일은 善益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굳건한 기초를 바탕으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물려받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결실은 뿌리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기억에 호소하는 것이 자기보호를 위하여 자신을 묶어두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 생명과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억은 정적이지 않고 동적인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살아 움직임을 의미합니다.”
복음 선포를 위한 변화
2017년, 국무원 산하에 신설한 세 번째 부서인 외교부를 예로 들면서, 이미 조치한 교황청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한다. 교황청과 특정 교회 간의 관계에 관한 변화, 동방교회성의 경우와 같은 교황청 ‘省’의 체계에 관한 변화, 종교일치와 종교간 대화, 특히 유다교와의 관계에 대한 변화 등이 그것이다. 교황은 전임 성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세상의 모습을 이미 간파하고 했던 말씀을 상기시킨다. “세상이 더 이상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은 과거사일 뿐입니다.” 이런 시대적 사조에 대처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교황청의 조직을 바꿀 필요가 생겼고 새로운 부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교황은 말한다.
“신앙교리성과 인류복음화성이 교황청 기구로 설치된 때는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지역과 복음화되지 않은 다른 세계가 확연히 구분되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서구대륙을 제외한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만 복음 선포를 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거대한 도시집중현상으로 인해 특별한 사목적 방안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맞는 새로운 사목적 계획과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런 변화는 더 이상 그리스도교 시대가 아닌 세상을 복음화하는데 맞갖도록 우리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계속)
출처: Vatican News, 21 December 2019, 11:04, 번역 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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