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가톨릭과 불교

MonteLuca12 2019. 11. 21. 23:46

종갓집 딸인 아내의 친정에 가서 참여한 것이 내 생애 첫 경험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평생 제사를 지내시지 않았다. 온통 미신과 우상숭배가 주위를 에워싼 환경 속에서도, 잿밥 한 톨조차 5남매 근처에 접근하는 기회를 철저히 차단하셨다. 지독한 호교론자들이었다고 말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신앙의 극단적 배타주의자’라고 규정하려면 상당한 용서를 청해야 하겠기에 여태껏 그래본 적이 없다.

 

갈라진 형제교회 안에서도 이단시하는 교파의 선교사들이 열심히 우리 집을 찾아왔다. 아버지의 냉대와 문전박대는 날씨와 절기에 상관없이 털끝만큼도 변하지 않았었다. 세뇌의 방법에는 억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체험적으로 안다. 성당 문을 나와 집에 오기 위해, 맞은 편 예배당 대문 앞을 지나야 하는 코스를 단 한 치도 벗어난 적이 없다. 그 영역을 넘어가면 안 된다는 강박의 지령 때문이지만, 복종의 의무는 내 스스로 설정한 자율적 규범이었다.

 

아버지의 양해가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머니는 공양미의 시주를 청하는 스님을 물리치지 않았다. 이것저것 주워들은 뒷담화 같은 것들로 인해 마음의 눈이 오염되기 전까지, 나에게 그분들은 약간 다른 모습의 수도자들이었다. 낙산사와 신흥사도 거리낌 없이 드나들었다. 목탁 소리는 그다지 편하지 않았지만, 향잡이 복사 전문가인 내게 향내의 거부감은 없었다. 경건하고 엄숙한 경내의 공기가 우리 것과 가까워 되레 친숙한 느낌까지 갖고 있었다.

 

교황님께서 불교의 나라에 가셨다. 넘쳐나는 기사 속에 우정과 존중, 이웃이나 ‘동반 여정’ 같은 단어들이 즐비하다. 무언가 통하고 함께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명상과 자비는 어렵지 않게 머리가 끄덕여지는 공감영역이다. ‘배타주의’를 물려받은 피가 ‘교회일치’라는 가치에 물든다. 하늘의 그분들이 동의해 주시리라 믿는다.

 

태국 불교의 승왕을 만난 교황

가톨릭과 불교는 좋은 이웃

태국 방문 첫날 교황은 태국불교의 수장인 승왕을 만나 평화봉사를 위한 개방적이고도 상호의 입장을 존중하는 대화를 갖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했다.

 

회의는 목요일 아침 방콕의 ‘왓 라차 보핏 사티트 마하 시마람’ 사원에서 열렸다.

 

지속적인 우정

 

아리야봉사가타나나 9세 (Ariyavongsagatanana IX), 태국 불교의 승왕은 교황에 대한 환영인사에서, 35년 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태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이 모임에 배석했었다고 말한다. 승왕은 태국 왕들이 바티칸을 방문한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1897년 레오 13세, 1934년 비오 11세, 1960년 요한 13세 교황을 알현한 기록을 설명한다. 그렇게 맺어진 ‘깊고 지속적인 우정’을 토대로 진정한 상호이해와 평등한 동반관계의 정신을 가지고 하나가 되자고 제안했다.

 

상호존중의 동반자

 

교황은 승왕에 대한 답례인사에서 전임자들이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온 과정을 이어받아 이번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50년 전에 제17대 승왕이 교황청을 방문해서 바오로 6세 교황을 알현했던 이야기를 꺼낸다. 교황은 자신도 그분들의 발자취를 따라 두 종교 간에 서로 존중하는 정신을 살리고 우정을 돈독히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만남의 문화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지역적으로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만남의 문화를 성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만남 보다는 서로 갈등하고 배척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또 확산되는 것이 여러 지역의 상황입니다. 이런 기회가 우리 두 종교의 신자들에게 형제애가 싹트게 하고 이를 키워나가는 계기가 되게 함으로써 희망의 등불이 널리 퍼져나가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태국의 가톨릭

 

교황은 약 4세기 반 전에 태국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이래, 소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신자들이 종교 활동의 자유를 누려왔고, 긴 세월 동안 그들이 불교신자들과 사이좋게 살 수 있게 해준 점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표했다.

 

좋은 이웃

 

교황은 태국 국민의 평화와 복지를 위해 자기 자신과 교회 전체가 마음을 열고 존중하는 자세로 대화하겠다는 약속을 되풀이했다. “학술교류를 통해 상호이해를 증진시키고, 공통점이 있는 명상과 자비, 그리고 분별력을 키우는 훈련을 서로 나누면서, 우리는 좋은 이웃으로서 성장하고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함께 해야 할 일

 

교황은 두 종교의 신자들이 함께 하는 새로운 자선사업을 개발하자고 제안한다. “이 사업은 특히 가난한 이들과 심하게 오염된 ‘우리의 공동의 집’(지구)과 관련하여 형제적 사랑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실질적인 계획을 만들어내고 다양하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우리는 동정심과 형제애, 그리고 만남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동행이 앞으로 계속해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출처: Vatican News, 21 November 2019, 05:00,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11/pope-in-thailand-catholics-and-buddhists-can-live-togeth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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