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교황청의 대림시기 특강(3) (2022년)

MonteLuca12 2022. 12. 22. 11:34

말로야 무엇을 못 하랴? 돈도 수고도 들이지 않고, 가리고 치장하는 데 그 이상 좋은 수단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머리와 가슴이 투명하여 그 속내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답답증을 걷어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웬만하면 세상사 다 그러려니 하며 눈과 귀를 닫고 살아야겠다 싶다가도, 입까지 합세하여 시작한 지적질에 열이 오른다. 간간이 ”내 눈의 들보“가 스쳐 지나가지만 아랑곳할 생각이 전혀 없다. 권위 같은 것은 털끝만큼도 없다는 말속에 오만과 자랑이 생선 가시처럼 꿰여있다. 문장의 시작과 끝이 담고 있는 의미가 각기 다르고, 주어와 술어가 영 어울리지 않는다. 아닌 척 자랑하고, 모른 척 드러낸다. 다들 어리바리 믿어주리라 믿고 신나게 떠드는 꼴이 눈꼴 사납다.

 

본디 우리가 품고 있었던 성탄의 느낌은 열림과 채움이 아니었나? 노예살이가 풀리고 절망의 껍데기가 깨지고 죽음의 벽이 무너지는 천지개벽 같은 전환의 때라는 주장에 토를 달 사람이 있겠나? 기쁨과 희망이 솟아나고 믿음과 사랑이 온 누리에 채워지는 엄청난 사건이라는 확신에 금이 갈 리야 있겠나?

 

아뿔싸! 성탄에 던져주신 성모님의 화두를 만난다. 겸손과 인내, 믿음과 희망, 자비와 사랑, 그 모든 덕을 쓸어담는 그릇이 ‘비움’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린이와 같이 되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그렇게 다가온다.

 

작은 목동의 품에 안기신 아기 예수님

-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의 품에 건네시다 -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 관료들을 대상으로 세 번째 대림 특강을 진행했다. 이번 성탄에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삶 깊숙이 들어오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기쁘게 맞아드리자고 추기경은 제안한다.

 

세 번에 걸친 금년 대림시기 특강은 세 번째 주제인 ‘사랑의 문’에 대한 성찰로 마무리되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인용하며 특강을 시작했다. 고대 이교도들은 하느님이 인간의 사랑을 받는 정도까지만 활동적이고 효과적인 분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신약 성경이 이런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다고 추기경은 말한다. 인간의 사랑하는 능력은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며, 그 사랑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났다고 설명한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요한 4, 12)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19절)”

 

어린이처럼 반기는 사랑의 선물

“그러므로 ‘사랑의 덕’(신학적 사랑)은 우리가 노력한 결과라기보다는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향해 사랑의 문을 여는 것은 매우 구체적인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분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성탄은 우리에게 ‘놀라움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선물’을 받도록 해주는 기회라고 추기경은 말한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되는 실망이, 우리를 사랑에 대해 조심스럽고, 심지어 냉소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랑을 믿기 위해서는 어린이처럼 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어린이들은 추론에 근거하여 사랑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연적으로. 부모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부모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심하게 조르기도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얻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어린이들이 모든 것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분은 성부와 성자께서 나누는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독특한 사랑 능력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사랑의 덕에 관한 특강을 이어간다. “사랑의 덕은 교회의 본질 중 핵심적인 부분을 형성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애덕을 ‘성인들의 친교’라고 불렀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도 사랑이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비계가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이 멋진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마지막엔 사랑만 남게 될 것입니다.”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인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사랑이 교회와 시민 사회 모두를 바로 세울 것이라고 덧붙인다. “사회적 정서는 복음이 일구고 물 댄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것은 인공 지능이나 기술 발전으로 대체 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인공적인 지능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적인 사랑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바로 이 지점에 인간의 고유성과 사람의 양도할 수 없는 속성을 배치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십시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이번 성탄절에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아기 예수님을 그리며 특강의 결론을 맺는다. 그분은 지금 당신 자신과 하느님의 사랑을 선물로 가지고 오시는 중이다.

 

동정 성모님께서 아드님을 어떻게 세상에 내어주시려 하는지, 우리는 그분을 영접하기 위해 왜 어린이가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로 결론이 마무리된다.

 

"성탄 전야에 아기 예수님를 만나러 갔던 목동들에 관한 재미있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 너무 가난해서 아기의 어머니에게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 양치기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한쪽 구석에 비켜 서 있었습니다. 모두가 경쟁적으로 성모 마리아께 선물을 드리려 나왔습니다. 성모님은 아기 예수님을 팔에 안고 계셨기 때문에 그 선물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성모님은 구석에 빈손으로 서 있던 꼬마 목동을 보시고 아기 예수님을 그의 팔에 넘기셨습니다. 빈털터리 소년에게 엄청난 행운이 돌아갔습니다. 이 행운이 여러분의 몫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Vatican News, 16 December 2022, 11:00, 번역 장주영

Cardinal Cantalamessa: Mary places Jesus in our arms at Christmas - Vatican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