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월요병’에 시달립니다. 오늘도 새벽 4시까지 지난주와 같은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난번처럼 유럽의 동이 틀 무렵에야 새로운 주간의 기도가 업로드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하루’ 기도는 일곱 개 언어(스페인어, 영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로 제공됩니다. 웹사이트 개편 전에는 우리나라 시간을 기준으로 전날 저녁 10시 정각에 올려, 이른 새벽에 기도하는 분들에게 우리말 기도 배달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세상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을 배려했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개편 이후엔 줄곧, 며칠 먼저 이미지 형식으로 업로드되는 모바일앱의 기도를 옮겨 월요일의 문제를 해결해 왔습니다. 새해 들어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바뀌었습니다. 이런 고충이 전해지면 운영방식의 개선이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대신 올리는 ‘주님의 세례’에 관한 아래의 글은 어제(로마 시간) Vatican News 영어판, “CHURCH” 섹션에 실린 기사를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기사 형식의 이 글을 쓴 이는, 바티칸뉴스의 기자가 아니라 안드레아 베나 신부(Fr. Andrea Vena)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짐작하건데 신부님의 기고문이거나 강론원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름 외에는 아무런 소개도 달려있지 않은 글쓴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인터넷을 뒤진 끝에, 작년 4월에 발간된 인터넷판 타임(TIME)지에 실린 신부님의 이름을 찾아냈습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한 전면봉쇄 상황에서 이탈리아 가톨릭 신부가 찾아낸 예배방식”이란 제목의 영문 기사였습니다. 신부님은 작년 3월 초, 이탈리아 전역에 대하여 약 한 달간의 전면 봉쇄령(lockdown)이 내려지자 사제들이 양떼를 돌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삼륜차에 성모상을 세우고 스피커를 설치한 신부님은, 베네치아 동쪽의 바닷가 휴양지 비비오네(Bibione) 곳곳을 다니며 기도문을 외우고 사람들을 만나면 멈추어 서서 성수를 뿌렸습니다. (사진 참조)
‘타임’지는 코로나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를 실천에 옮긴 사제의 모범으로 안드레아 베나 신부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동명이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신부님의 글(강론)에 깊은 감명을 받아 '기도 네트워크' 가족들과 오늘의 기도 대신에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시기가 마무리되고 연중시기로 넘어갑니다. 주님의 세례는 단지 전례시기의 갈림목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로 태어난 예수님께서 우리들 가운데 함께 계시도록 맞아들이는 중요한 사건인 것입니다.
루카 복음에 따르면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셨다”고 전합니다. 백성들이 이미 받은 세례를 예수님께서도 받으셨다고 밝히는 복음사가 루카의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한가운데에 계심으로써 죄 많은 당신 백성들과의 연대감을 드러내십니다. 공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받은 사명에 관해 확실한 인증을 남기신 것입니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기 위하여 "당신 자신의 손을 더럽히러" 온 분임을 밝히십니다.
세례
다른 복음사가들과는 달리, 루카는 세례 자체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의 배경에 깔아둡니다.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셨다”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루카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바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셨다”라는 대목입니다. 이것은 루카 복음사가가 자주 반복해서 사용하는 소중한 주제입니다. 이와 같은 기도의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에게 성령의 은사가 내리고, “내 마음에 드는 아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얼마나 신뢰하시는지 확인시켜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세례에 관한 루카복음의 기록은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인간들과의 연대감을 나타내심으로써 성부께서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기도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은사를 받으십니다. 이 구절이 시사(示唆)하는 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즉 하느님과 일대일로 말씀드릴 때 우리도 성령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께로 돌아가 그분과 함께 지내도록 이끌어주는 길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다시 태어나 숨을 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시작된 몸짓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를 통해서만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자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내가 사랑하는 당신”,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씀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
하느님 아버지께서 간택하신 아들, 예수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우리도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다. 진실로 당신은 그런 사람입니다.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모든 형제자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우리가 죄 중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그분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성탄에서 일어났던 일이 세례에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신 것처럼, 그분께서 당신 안에 들어오시어 당신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명백히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사가 마리아께 전한 ‘주님 탄생 예고’를 기억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루카 1, 37) 마리아께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은 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하느님의 권능으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늘이 열려 성령께서 내려오시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당신 안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Vatican News, 08 January 2022, 09:29, 번역 장주영
'교황님의 기도 네트워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가 해야 할 일 (0) | 2022.01.11 |
---|---|
영적 질병에 걸린 사람들 (0) | 2022.01.10 |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하소서 (0) | 2022.01.08 |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0) | 2022.01.07 |
어둠 속의 빛 (0) | 2022.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