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쌓을 것인가? 다리를 놓을 것인가?” 지난 3월 말 모로코 사목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교황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지난 몇 년 간 꾸준히 읽으면서 어렴풋한 공감을 불러일으켜온 그분의 사목적 관심사가 흩어진 구슬이 꿰어지듯 반듯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두 교황’을 보았다. 감성적으로 슬픈 장면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분들의 말씀이 눈에 번쩍 띄어 길이 새겨두고 싶은 욕심이 생긴 때문도 아니다. 깊은 상념에 빠져 울컥 솟아오르는 나만의 설움에 취하지도 않았다. 대단하지 않은 대화와 소박한 몸짓이 담아내는 감동으로 인해 먹먹해진 가슴이 밀어내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세속의 삶을 따라다니는 헤진 마음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교회의 아픔과, 그 아픔을 몸소 겪는 어르신들의 고뇌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확고한 신념의 한계수위를 넘어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말씀은 계속 반복되어도 지루하지 않다. 그분의 실천이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믿음은 몇 가지 사례와 짧은 기간 안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아프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쫓겨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의 상처를 기회 있을 때마다 알려주는 교황님은, 박해와 탄압, 다툼과 전쟁, 불의와 부정, 그리고 위선을 서슴지 않고 질책하신다. 노익장이 빛난다.
이른 새벽 처음 이 기사를 만났을 때 교황님의 ‘사과’에 대한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아 번역에서 빼놓았었다. 방송이 전해주는 교황님의 모습을 보고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상황을 이해하고 싶은 억지를, 새해 첫날 전 세계를 향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신 소탈한 인간미가 가로막는다.
치사한 세상이 변명과 책임전가로 덮여있다. 장식용, “내 탓이오!”는 위선자의 공염불이 되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두 교황’ 속의 평범한 대사가 새해 이 세상에 전해지는 평화의 메시지이다.
희망과 평화의 새해
교황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삼종기도에서 새해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 사랑의 축복에 감사하며 살자고 새해인사를 전했다. 교황은 어제 성 베드로 광장에 있는 구유 근처에서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사과의 뜻도 밝혔다.
새해가 시작된 수요일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들과 삼종기도를 바치면서 새해인사를 했다. “지난 밤 우리는 시간이라는 큰 은총을 선물로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2019년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같은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마음으로 2020년 새해를 시작합니다.”
아들을 보여주십시오
교황은 새해 첫날 지내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에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온 교회가 성모님의 전구를 청합니다. 성모님은 온 세상의 ‘전구자’이십니다. 천사들이 베들레헴에서 노래한 것처럼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기쁨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세상의 죄를 송두리째 없애시는 구세주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내리신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사과 인사
“주님의 구원은 마법이 아니고 그것은 병든 이들을 낫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고 기다리는 사랑이며, 그것은 악을 대항해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참고 기다리게 만듭니다. 우리는 자주 인내심을 잃어버립니다. 저도 어제 그랬습니다. 죄송한 마음으로 사과드립니다.”
화요일 저녁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에 설치된 구유를 방문해 신자들과 만나고 있을 때, 한 여성이 교황의 팔을 잡아당겼다. 놀란 교황은 순간적으로 그녀의 손을 뿌리치면서 참을성 없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죄악의 사슬에 묶여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에도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불의에 의해 희생되고 착취를 당하면서도 길을 잃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형제애로 감싸주십니다. 형제적 사랑에는 반겨주는 표정과 따뜻한 마음, 잡아주는 손길이 담겨있습니다. 이 사랑 안에서 그들은 서로 괴로움과 절망을 나누고 존엄성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각하게 아프고 버림받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상처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약점을 ‘선한 힘’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들 안에 갇혀 자기들끼리만 가깝게 지내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작은 빛을 비추심으로써 희망의 지평을 다시 열어 주십니다.”
세계 평화의 날
교황은 또한 새해 첫날 53번째 세계 평화의 날에 대한 메시지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2020년 메시지의 핵심은 '희망의 여정인 평화'입니다. 대화와 화해,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통해 진행되는 여정인 것입니다.”
새해, 희망의 여정
마무리하면서 교황은 이렇게 당부한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천주의 성모 마리아께 전구를 구하십시오. 성모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축복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한 해의 시작은 희망과 평화의 여정이 출발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말로써 뿐만 아니라 매일 같이 하는 대화와 화해의 몸짓,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돌보는 일인 것입니다.”
출처: Vatican News, 01 January 2020, 12:07,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12/pope-wrold-peace-day-messag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