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 징후
탐험대를 조직했다. 벌써 몇차례 ‘작전회의’가 있었다. 제법 많은 준비물을 조달하는 것이 우리 형편 상 녹록하지 않다. 후방 마무리 책임자는 만장일치로 진즉 선발되었지만, 척후 임무를 맡은 선봉대장을 뽑는 데에는 약간의 진통이 있었다. 탐험 마지막의 시간 관리가 중요하여 체력과 순간기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소하고 부실한 체력 탓에 대열의 제일 중간 자리를 배정받았다. 몇개 받아 둔 날 중에서 D-day를 정했지만 H-hour를 잡는 것에는 신중을 기했다. 탐험에 소요되는 시간을 정확히 추정해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행의 날이 왔고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작전을 개시했다. 공식적인 시작기도 없이 침묵 중에 각자 하자는 약속도 미리 해 두었다. 작전에 방해되는 기도 소음조차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주도면밀한 계획의 결과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거기에도 계실 거죠?”
2주간의 긴 여행계획을 짜는 머리에 탐험의 기억이 겹친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동부지역의 오르막길을 달리고 있다. 머지않아 주경계를 넘어 「앨버타」로 넘어간다. 구비구비 이어지는 길 주변의 경관이 눈 붙일 틈을 주지 않는다. 똑같이 예쁘면 머지않아 진력이 날 텐데 구비마다 그림이 완전히 다르다. 하늘도 산도 나무도 물도, 구름 마저도 전혀 다른 세상을 연출한다. 누가 이런 짓을 할 수 있으랴? 위대한 자연, 그것을 지어내신 분.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인가 보다. 그분의 왕국은 이런 모습일지 모른다. 적어도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행복느낌’으로는 틀림없을 거란 확신이 선다.
탐험은 작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뿔싸! 걱정했던 사태가 막바지에 터지고 말았다. 공포가 지배하는 악마의 소굴, 암흑의 지하에서 어린 용사들의 숨이 멈춰 있다. 내 새가슴은 아예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걸리면 퇴학 당할지도 모른다. 이 순간 척후병 친구는 맏형 위의 형 같다. 그의 손이 지상의 세계와 연결된 뚜껑에 닿자, 조자룡의 칼날처럼 예리한, 한 줄기 레이저 광선이 잠시 멎은 심장을 깨운다. 어린 탐험대는 가까스로 그 역경을 딛고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주일 오후는 소신학교의 빡빡한 생활시간표에 자리잡은 달콤한 쉼터다. 하필 역사에 기록될 그 순간, 침실장 형은 자기 침대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바로 그 침대 밑에 마루밑창을 연결하는 개구부가 있다. 그렇게 넓은 8호 침실 밑엔 무엇이 살고 있을까? 그곳이 마귀의 소굴이라면 한판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갸륵한 생각은 아니었을까?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철부지 꼬마 신학생들이 모험의 용기를 보여준 것은 하느님 보시기에 기특했을 것 같다. 거친 세상에서 그렇게 복음을 전해야 할테니까.
「주님의 기도」 세 번째 주제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에 대한 교황님의 교리교육이다. 이탈리아어 원문을 번역하여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한 영문텍스트를 필자가 우리말로 중역한 것임을 밝힌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1)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할 때, 하느님께 바치는 두 번째 기도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마태 6,10)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게 되기를 기도 한 후에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소망은 갈릴레아에서 설교를 시작할 때에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이 말은 전혀 위협이 아닙니다. 반대로 그것은 기쁜 소식의 선포이며, 즐거움이 가득한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공포나, 악행에 대한 죄책감을 심어 회개할 것을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개종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복음을 선포하시는 겁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심으로써 그 복음을 들은 우리가 회심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을 믿으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하느님의 주권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주권이 그분의 자녀들과 가까이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위대한 일, 이 큰 은총을 선포하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가까이 계시며 거룩한 길을 가도록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온다는 긍정적인 징후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이나 영혼이 병든 이들을 돌보는 것에서부터 구원사업을 시작하십니다. 나환자와 같이 사회적 격리를 경험한 사람들, 모든 사람으로부터 경멸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죄인들에게 다가가십니다. 그런데 이들 보다 더 큰 죄를 짓고서도 모른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위선자’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가 오신다는 징표를 당신 스스로 나타내 보이십니다.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마태 11, 5)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침으로써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를 꾸준히 반복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셨지만 세상은 여전히 죄에 물들어 있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전쟁과 다양한 형태의 착취가 난무합니다. 아동 인신매매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현상들은 그리스도의 승리가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마음을 닫고 삽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외우는 두번째 청원,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는 마치 이렇게 청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당신께서는 우리의 주님이시니 어디서나, 언제 까지나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청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1) Vatican News, "Udienza Generale 6 Marzo 2019," Vatican News, last modified March 6, 2019, https://www.vaticannews.va/it/papa-francesco/udienza-papa/2019-03/papa-francesco-udienza-generale-padre-nostro-regno-mitezza.html#play.
(2) Virginia Forrester, "General Audience: Pope Reflects on 'Thy Kingdom Come' (Full Text)," Zenit, last modified March 6, 2019, https://zenit.org/articles/general-audience-pope-reflects-on-thy-kingdom-come-full-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