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신작 영화 '사제'(Priest)

MonteLuca12 2020. 12. 7. 12:16

다른 날보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뗀다. 시간이 촉박해서가 아니라 제법 차가워진 새벽공기를 피해보자는 심산이다. “이건 또 뭐야!” 닫혀있는 허리 높이의 미닫이 대문 사이로 성모상 앞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윤곽을 감지한다. 그냥 가기가 아쉬워 초라도 봉헌할 양으로 어스름에 더듬대는 허리 굽은 할머니의 서운한 마음을 읽는다. 주머니 깊숙이 손을 찌르고 돌아서는 순간 솟아오르던 불만을 밀어 넣지 못했다. “젠장, 세 분이나 계시면서 그냥 좀 하면 안 되나?”

 

매월 첫 토요일엔 성모신심미사 때문에 새벽미사를 없앤 지 오래됐다. 분명히 주보에 공지도 되어있으니 전적으로 그걸 잊고 온 사람의 탓이다. 그래도 식지 않는 불평은 여기저기로 불똥을 튀긴다. 벙어리 미사가 제공한 최적의 분심 조건이 다양한 불만을 쌓아놓게 만들었다.

 

정제되지 않은 강론이 몹시 귀에 거슬린다. 중언부언을 들어야하는 자리가 몹시 불편하다. 맞춤 준비 없이 우려먹는 것이라 단정하며 귀를 닫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급기야 불만의 이론적 근거를 찾아낸다. ‘말씀의 내면화'가 결여된 피상적 성경해석에 불과하다는 평가로 낮은 점수를 매긴다. 성체분배와 관련된 ’보조성‘의 남용을 목도한다. 부지불식간에 가볍게 인식되는 ’목자 고유직무의 본질적 차이성‘이 자연스럽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 휩싸인다.

 

커피의 마법에 걸린다. 그 안에 담긴 성분의 효과라기보다는 잔을 마주하는 분위기에 이끌려 찾아낸 마음의 안정이다. 내가 바리사이다. 건방지고 교만한 것이다. 쥐꼬리만큼 아는 것이 죄의 원천이다. 단잠을 깨고 추위에 떨며 찾아간 성전은 내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순결무구한 하룻강아지가 더 용감하다는 역설의 뜻을, 한 모금의 커피 맛과 함께 음미한다.

 

영화 ‘사제’의 개봉 소식을 전하는 Vatican News의 기사가 하필 이 시간에 눈에 띈다. 결코 우연이 아니지 싶다. 부지런히 번역을 시작한 것은 퇴적된 불만더미를 녹여보자는 의도가 곁들여 있었다. “신자들 보다는 신부님들이 이 영화를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 번역을 마치면서 무의식중에 중얼대던 말이다. “내 참, 말짱 도루묵이네!” 바리사이의 물이 쉽게 빠지질 않는다.

 

신작 영화 '사제'(Priest) - 신앙의 가치를 일깨우다
 
영국인 신부의 일상을 그린 새로운 다큐멘터리 영화가 온라인에서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사순시기부터 주님부활대축일에 이르는 한 사제의 평범한 삶을 담고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성직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가 수없이 많이 상영되었다. 스펜서 트레이시(Spencer Tracy)에게 두 번이나 오스카상을 안겨준 「보이스 타운」이나, 젊은 그레고리 펙(Gregory Peck)이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화제를 모았던 「천국의 열쇠」 같은 영화가 대표적인 것들이다.
 
성직자들이 등장하는 텔레비전 드라마 역시 적지 않다. 그중에는 경찰을 도와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성직자의 활약상을 그린 것들이 있다. 영국 작가 체스터턴(G. K. Chesterton)의 탐정소설을 드라마로 엮은 「명탐정 브라운 신부」, 미국의 미스터리 시리즈 「다울링 신부의 미스터리」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개봉된 온라인 영화에서 영국인 감독 마이클 화이트(Michael Whyte)는 성직자의 영웅적인 모습 대신, 사제들의 소소한 일상을 그렸다. 마치 벽에 붙어 있는 파리를 바라보듯이 사제의 생활을 영화에 담아냈다.
 
‘사제’라는 단순한 제목이 달린 이 다큐멘터리는 폴 그로건(Paul Grogan) 신부의 사목활동을 따라간다. 그로건 신부는 영국 북부 브래드퍼드에 있는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성당의 주임신부다.
 
핼리팩스에서 태어난 그로건 신부는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후 기자가 된다. 사제가 되기로 마음먹은 그는 기자의 직업을 버리고 로마로 떠난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로마에 있는 신학교, ‘Venerable English College’에서 사제가 되기 위한 과정을 이수한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되기 이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신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는 교구 사제의 모습을 보여준다. 장례예식의 시작 장면부터 하관예식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하직하는 인간의 전 과정을 돌보는 성직자의 모습니다.
 
마이클 화이트 감독은 바티칸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사제가 받은 선교사명의 우여곡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제작의 취지를 설명한다.
 
평탄하지 않은 사제생활
 
“저는 사람들이 사제의 일에 관해 가지고 있는 견해가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삶을 아주 평탄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집 걱정을 안 해도 되고 평생 안정된 직장이 보장될뿐더러 하느님이 그분들 편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이런 일반적인 생각이 사제생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사제들도 감정을 지닌 보통의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분들의 일상에도 불안과 스트레스가 늘 따라다닌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영화가 신앙을 바탕으로 제작한 마이클 화이트 감독의 첫 번째 작품이 아니다. 사실 이 영화는, 런던의 가르멜 수녀원의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랑의 침묵」 (No Greater Love), 리지유의 데레사(소화 데레사) 성녀의 유해를 영국에 모셔와 순례하는 여정을 엮은 영화 「성해(聖骸)와 장미」 (Relics and Roses)에 이어지는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
 
신앙에 관한 본질적 질문
 
가톨릭 신앙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영화를 세 편이나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모든 사람들이 품고 있는 영원한 의문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지금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런 의문들 말입니다. 아무도 거기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놓는 사람이 없습니다.”
 
신앙을 소재로 한 영화에 첫발을 들여놓은 중요한 계기는 자신이 살던 동네 노팅힐의 이웃에 있던 가르멜 수녀원에 대한 호기심이었다고 감독은 회상한다. "내가 살던 곳에서 문자 그대로 100야드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수녀원이 있다는데 흥미를 느꼈습니다."
 
1년에 걸친 촬영을 마치고 ​​마침내 이 영화가 완성되었을 때, 화이트 감독은 사제들의 삶과 성직의 가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마침표를 찍었다고 술회한다. “ 영화를 만들면서 살아온 지금까지의 내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험 하나를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마이클 화이트 감독은 성공회 신자로 자랐지만 가톨릭의 영화나 드라마에 특별한 흥미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는 가톨릭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나름대로 이렇게 밝힌다. “가톨릭 신앙은 이천년을 이어왔지만 여전히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또한 엄청나게 많은 신자들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는 무언가 올바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사제’의 이야기는 사순시기부터 시작하여 교회력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주님부활대축일까지 이어진다. 성주간의 예식을 순서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하는 화이트 감독은, 그것을 알게 된 것도 하느님의 섭리였다고 고백한다.
 
특권
 
마이클 화이트는 화려한 이력을 가진 영화감독으로,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작품이 가져다주는 특권을 절대로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신념을 밝힌다.
 
“당신이 완전히 낯선 사람의 삶속에 들어가 그들 곁에서 함께 머무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그들 삶의 한 부분이 되고, 그들의 장단점과 취약점을 모조리 다 알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이 원했던 일이라면 그것은 축복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한번 해보고 싶을 뿐이었다면,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과 모든 비밀이나 내면의 생각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아마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당신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상대편에게 그런 생각을 감추는 것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은 정말 대단한 특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은 그로건 신부가 교구 신자인 메리 커닝햄(Mary Cunningham)에게 마지막으로 병자의 성사를 집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화이트 감독은 그 장면을 촬영하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제가 그 방에 들어간 것은 대단한 특권이었습니다. 처음엔 제가 그 방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게는 거기에 있을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은 대단히 사적이고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 한구석에는, 뜻 깊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함께 피어올랐습니다.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성직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사제의 일상이 어떤 일들로 구성되어있는지 보여주기 위하여 제가 이 장면을 촬영해야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모순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감정이 영화를 만들거나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믿음의 가치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얻기를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화이트 감독은 이렇게 대답한다. “믿음의 가치, 그것이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기쁨과 일치의 가치를 확인하길 바랍니다. 이것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사랑과 돌봄의 정신, 아름답고 진실한 마음, 그런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폴 신부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감정의 기복이 있습니다. 불쾌해 하고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가 있는가 하면 푹 가라앉을 때도 있습니다.” 감독은 이렇게 덧붙인다. “비록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영화를 보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의 믿음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영화 ‘사제’의 예고편을 보려면 이 링크를 따라 가십시오.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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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Vatican News, 04 December 2020, 11:14, 번역 장주영

www.vaticannews.va/en/world/news/2020-12/new-film-priest-explores-value-of-faith.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