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의 날
기도와 희생, 사랑과 나눔, 헌신과 봉사! 우리 신앙인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말일 것이다. 모두가 소중한 덕목으로 받드는 ‘가난’은 얼마나 다양한 의미로 각자의 마음에서 풀어지는지 모른다. 때론 아전인수 격 뜻풀이에 가난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안도하기도 한다.
지난 주일을 지내면서 특별히 많이 들었던 단어, ‘가난’은, 그 낱말을 처음으로 배웠을 적에 알았던 의미 그대로다. 교황님께서는 유난히 이 단어를 많이 쓰신다. 2016년 11월 ‘자비의 희년’을 폐막하며 제정하신 것이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다. 자비와 가난은 그렇게 연결된다. 자비의 대상이 가난이고,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이 사랑이다. 기도와 도움이 그 꽃을 피우는 거름이다.
집회서의 말씀, “가난한 이에게 네 손길을 뻗어라”(7장 32절)는 무관심의 장벽을 뛰어넘으라는 가르침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이루는 연대는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 마음에 드는 예배를 거행하려면, 가장 가난하고 멸시받는 이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 안에 하느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 축복의 선물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시작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호의를 실천할 때 우리는 하느님 축복의 선물을 길어 올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에 시간을 바친다는 구실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등한시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가 함께 이루어질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강복해 주시고 기도의 지향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4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제3항)
손길을 뻗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자신의 역량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 안에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를 향하는 많은 손길을 우리는 날마다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삶의 속도 때문에 점점 더 우리는 무관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결국 날마다 소리 없이 큰 호의로 이루어지는 주위의 많은 선행을 더 이상 알아차리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삶의 흐름을 뒤바꿔 놓는 일들이 일어날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눈은 “옆집” 성인들의 선의를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같은 담화, 제5항)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목적은 오직 사랑입니다. 이것이 우리 여정의 최종 목표이고, 그 무엇도 우리를 이 목표에서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랑은 나눔이고 헌신이며 봉사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먼저 사랑받았고 사랑으로 깨어났다는 인식에서 시작됩니다. (같은 담화, 제10항)
'가난한 이들은 우리의 영원한 소득을 보장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신하여 기도와 자선, 복음을 증거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바치라고 촉구했다.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은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제정되었으며 매년 연중 제33주일에 지내고 있다. 네 번째 맞이하는 금년도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주제는 “가난한 이에게 네 손길을 뻗어라”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기념미사를 집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의 복음(마태 25, 14-30)을 주제로 강론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맡기고 여행을 떠나는 주인의 비유에 관한 내용이다.
교황은 이 비유가 우리 삶의 시작과 끝은 물론, 인생 전반에 걸쳐 해당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작: 재산의 관리를 위임받다
“모든 것은 지극히 선하신 하느님의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은혜로 시작되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각기 다른 재능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큰 재산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부자인가는 우리가 소유한 것 때문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가 받은 삶, 우리 안에 있는 선한 마음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에 지워버릴 수 없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교황은 더 나은 직업이나 더 많은 돈을 갈망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경고한다. 우리 삶에서 부족한 것만 보려고 하는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을 지적하는 것이다.
'더 많이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하는 것은 환상을 따라가는 허황된 짓이라고 말한다. 그런 생각은 자신이 받은 재능을 제대로 인식하고 잘 활용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당신의 재림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현재의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우리에게 일러주셨습니다.”
중간: 봉사하는 삶
계속해서 교황은 비유의 담긴 뜻이 우리의 삶과 어떤 연관을 가지는지 설명한다. 그것은 종의 직무 즉, 봉사라고 말한다.
“봉사는 우리의 재능의 열매를 맺게 하고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봉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치 있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교황은 착하고 성실한 종은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을 복음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말한다.
“충직한 종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맡은 재산을 잘 활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거나 지나치게 조심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투자하여 활용하지 않으면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에 대한 평가는 얼마나 잘 보관하고 있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었는지가 기준이 됩니다.”
선을 행하기보다는 재산을 축적하는데 중점을 두는 삶은 허무한 것이라고 교황은 말한다. “우리가 선물을 받은 이유는 우리 자신이 선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대금업자
교황은 질문을 던진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대로 봉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드신 비유를 보십시오. 주인은 자신의 재산을 땅에 숨겨둔 믿음 없는 종을 문책하십니다. 이자를 얻기 위해서 대금업자들에게 돈을 맡겼어야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대금업자들이 바로 ‘가난한 이’들이라고 교황은 말한다.
“가난한 이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수입을 보장합니다. 지금도 그들은 우리가 사랑의 부자가 되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최악의 가난은 사랑의 가난입니다.”
교황은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족한 것을 요구하기보다 가난한 이들에게 손길을 뻗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맡은 재산이 크게 증가할 것입니다.”
끝: 성공이냐, 사랑이냐
그리고 교황은 예수님께서 드신 이 비유가 우리 삶의 끝에 관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본다.
“우리의 삶이 끝나고 진실이 밝혀지면 이 세상의 겉치레는 사라질 것입니다. 성공, 권력, 돈이 삶의 의미를 부여했다는 믿음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반면 우리가 베푼 사랑이 진정한 재산이라는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가난한 이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하십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헌신임을 잊지 맙시다.”
헌신적인 봉사의 사례
마지막으로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다가 두 달 전에 살해당한 이탈리아 신부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로베르토 말제시니(Roberto Malgesini) 신부님은 이탈리아 코모(Como) 교구의 성 로코 성당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그를 죽인 사람은 정신질환을 가진 튀니지 이민자로 로베르토 신부님이 그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학문적인 신념에서 이 일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보았고 그들을 섬기는 삶의 의미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따뜻한 손길을 뻗어 ‘위로자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로베르토 신부님의 삶은 오롯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헌되었습니다. 충직한 종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하루는 하느님의 선물을 받기 위한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신부님은 하루 온종일 자기가 받은 사랑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분의 모습은 확실한 복음의 증거자였습니다.”
출처: Vatican News, 15 November 2020, 10:32, 번역 장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