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신앙의 기쁨

MonteLuca12 2020. 1. 30. 07:11

성수통에 담그려던 손이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한다. 같은 극이 맞닿아 밀어내는 자석처럼 척력이 작용하는 기이한 느낌이었다. 흠칫 뒤를 돌아보고 총총걸음으로 '지정석'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깟 일에 졸아든 가슴이 부끄럽고 그 모습을 들키지 않은 것에 안도한다. 겹겹이 가식으로 뒤덮인 겁쟁이의 모습이 짧은 순간 적나라하게 껍질을 벗고 말았다.

 

현미경이 아니면 볼 수도 없는 비세포성 미생물이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성수통 앞에서 반짝 드러난 어지러운 생각이 멀리멀리 퍼져나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정쟁(政爭)의 소재가 될 것도 같고, 갈 곳을 못 찾고 흘러 다니는 票를 쥐고 흔들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외교문제로 불똥이 튀어 국가 간 이해관계를 건드릴 수 있다는 논평도 들린다. 무성한 말들이 혼란을 더욱 키우는 사이에, 바이러스는 계속 모습을 바꿔가며 우리의 삶을 공격한다. 세상이 좁아진 것에 다시 한 번 놀라고 인간이 자랑하는 과학기술의 수준이 참으로 의아하다.

 

만나기가 꺼려지고 잡으려는 손을 뿌리치기가 민망하다. 마음이 갈라지고 우애가 멀어진다. 내 몸 챙기느라 부산하고 나 살기에 바쁘다. 원래 사는 모습이 그랬나 보다. 성수도 찍지 못하게 만드는 미생물의 침략을 교황님이 걱정하신다. 며칠 전 어르신께서는, 기도와 함께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셨다. 세상의 모든 하느님 백성을 염려하시는 교황님의 마음을 읽었다. 아침에 만났던 성수통의 기억이 그 생각을 덮는다.

 

초대받은 행사가 '우한폐렴'으로 인해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날, 천진난만한 어린이처럼 노래하고 춤추며 잔치를 여는 왕의 이야기를 듣는다. 믿음의 바탕은 기쁨이라는 깨우침을 싣고 왔다.

 

산타 마르타 집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교황

기쁨이 없는 신앙은 형식의 노예
 
교황은 신자들에게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을 표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분이 가까이 계심을 느낄 때 자연스럽게 기쁨은 생겨난다는 것이다. 화요일 아침 산타 마르타 집에서 집전한 미사에서 강론을 통해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복음은 기쁨으로 가득 찬 이들에 의해 전파됩니다. 주님을 모신 식탁 위에서 가족들이 나누는 바로 그 기쁨입니다.”
 
강론의 주제는 다윗과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주님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을 축하하며 나누는 큰 기쁨에 관한 것이었다. 이날 미사의 제1독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기쁨을 나누는 축제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자기들 가까이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며 축제를 열었습니다. 주님의 궤를 모시고 다윗 성으로 올라가는 행렬을 이끌던 다윗은 황소와 살진 송아지를 제물로 바칩니다. 다윗은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고 온 이스라엘 백성이 참여하여 함성을 올리고 노래를 부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축제를 벌이게 만든 것입니다. 다윗은 사람들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는 기쁨에 넘쳐 부끄러운 줄도 몰랐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돌아오신 주님을 만난 영적 기쁨이었습니다. 다윗은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궤를 되찾은 행복과 기쁨을 백성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면서 나누었습니다.”
 
“우리도 본당이나 구역에서 갖가지 행사를 엽니다. 이런 모임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낄 때 기쁨을 느낍니다. 이와 연관되는 내용을 구약의 '느헤미야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서가 발견되었을 때 기뻐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잔치를 열어 그 기쁜 일을 자축했습니다.”
 
기쁨에 대한 모욕
 
“다윗의 여러 아내들 중 하나인 미칼은 사울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윗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백성들처럼 저속한 춤을 추고 있다고 비웃었습니다.”
 
“미칼의 반응은 진정한 신앙심에 대한 경멸이고 주님과 함께할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녀에게 궤가 돌아왔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주님 앞에서 흥겨워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성경은 미칼이 이로 인해 벌을 받아 죽는 날까지 아이를 낳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마음의 기쁨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실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기쁨에 찬 복음전파자
 
“축제는 영적인 표현일 뿐 아니라 나눔이 됩니다. 백성을 축복한 후에 다윗은 이스라엘 모든 군중에게 빵 과자 하나와 구운 고기 한 덩이, 건포도 과자 한 뭉치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온 백성은 저마다 자기 집에 돌아가서 축하모임을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주님의 궤가 돌아온 것을 축하해 잔치를 여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축제가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그것이 전부인양 본질을 흐리게 이어지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선대 교황이신 성 바오로 6 세는 교황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에서 ‘복음은 따분하고 엄격한 복음전파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쁨으로 가득차고 활력이 넘치는 분들에 의해 전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는 기쁨, 그리스도인이 되는 기쁨, 바른 길을 따라 나아가는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축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울의 딸 미칼처럼 형식적인 신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그리스도인은 형식의 노예일 뿐입니다.”

출처: Vatican News, 28 January 2020, 13:46,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francis/mass-casa-santa-marta/2020-01/pope-francis-mass-santa-marta-joyful-christian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