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eLuca12 2020. 1. 9. 11:35

말은 하느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사랑을 전하는 도구다. 우리는 말로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즐거움을 노래한다. 소식을 전하고 기쁨을 나누기도 한다. 위험을 알려주는가 하면 생명을 구하는 결정적 역할을 할 때도 있다. 구원의 기쁜 소식도 말을 통해 전해진다.

 

말은 칼과 창이 되기도 한다. 찌르고 베어 상처를 낸다. 때와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공기 속을 흘러 다닌다. 뒷담화와 거짓의 유용한 수단이다. 진흙보다 물보다 더 모양을 바꾸기 쉬어 마음대로 붙이고 뗀다. 더하고 빼기를 반복하여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생산해 낸다. 발이 달렸는지 바퀴를 끼었는지 빠르게 멀리까지, 잘도 간다.

 

바벨탑에서 갈라져 귀를 막았던 말은, 성령강림에서 하나가 되어 다시 들려온다. 말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인 ‘로고스’이다. 로고스는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해 주는 안내자이고 인간의 스승인 그리스도이시다.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계획이 그 안에 담겼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요한 1, 1)

 

'말'에 관한 좋은 글이 눈에 띄었다. 기사 형식이 아니라 칼럼으로 Vatican News에 실린 것이다. 글쓴이 세르지오 센토판티(Sergio Centofanti)는 전직 Vatican News 기자로 교황청의 신설부서인 「교황청 홍보를 위한 부서」의 편집차장으로 작년 7월 임명되었다. 길지만 내용이 끊길 것을 염려해 한 번에 올린다.

 

 

성경

 

‘言行一致’의 용기
 
말이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부주의한 말에 대하여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늘 하고 있는 말에 관하여 성경에 나타난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하자.
 
신자들이 복음을 실천에 옮기려 한다면 우리가 공적 토론에서 사용하는 어투가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따른다면 우리의 반성과 성찰은 어떻게 바뀔까?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에페 4, 29~32)
 
비방의 마당 소셜 미디어
 
우리 신자들은 소셜 미디어뿐만 아니라 신구 형태의 모든 미디어, 웹 사이트 및 블로그를 사용하는데 있어 훌륭한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합법적인 대결, 타당한 비판, 거부감 없는 아이러니 등은 제쳐두고, 악의적이며 편파적인 고발과 조롱, 비웃음과 흠집 내기, 끝없는 비방들이 난무한다. 그것들이 철회되고 난 후에도 남는 것은 인신공격의 상처뿐이다. 우리가 이방인들의 사도이신 바오로 성인의 책망을 새겨들었다면 이런 모습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한다면, 서로가 파멸할 터이니 조심하십시오. 내 말은 이렇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갈라 5, 14~16)
 
칭찬보다 멀리 가는 험담
 
우리 신자들이 복음을 실천하고 산다면 우리의 대화방식이 ​​어떻게 달라지겠는가? 그래도 복음을 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쁜 소식의 잠재고객이 훨씬 많고 더 넓게 퍼지기 때문이다. 스포츠 쇼에서 반대 팀의 팬들끼리 말다툼을 하며 서로를 심하게 모욕한 적이 있었다. 서슴없이 반칙을 범하고 심한 말로 공격을 주고받았다. 거기엔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상업적 전략이 숨어있었다. 그러나 팬들에 의해 우상화 된 팀은 그로 인해 얻은 것이 없었다. 우리 신자들이 교회에 대하여 확실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서 구원해 주셔야할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허영으로 가득 찬 말
 
그리스도인들이라 해서 자기과장, 자아도취, 이기주의, 허영심 같은 죄를 짓고 않고 살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언급하는 초점이 성경말씀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관한 것이며 우리의 말일뿐인 경우를 자주 본다. 성경과는 반대로 우리는 커지고 주님은 작아진다. 베드로 사도를 위선적이라고 격분한 사도바오로를 우리는 쏙 빼닮았다. 우리 모두 예외 없이 어느 정도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시에나 성녀 카타리나가 되고 싶어 한다. 성녀는 교황님에게 격렬한 항의 편지를 쓴 적이 있다. (그렇지만 성녀는 교황님을 ‘온화한 지상의 그리스도’이라 부르며 늘 충성하는 입장이었다.) 우리는 ‘거룩한 목자’를 고발하고 비난하기 위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학식과 능력과 덕망’(교회법 제212조 3항)을 바탕으로 스스로 심판관이 된다. 그리고 환시나 예언을 해석하고, 영적 신비와 신비한 예시를 해독한다. 마침내 우리는 사람들의 맹렬한 비난으로부터 교회를 구해내기 위해 주님께서 특별히 선발한 사람으로 행세한다. 자신을 점점 크게 만들어가다가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의 분노를 폭발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마태 15, 8)
 
서로를 존경하기
 
사도 바오로의 유명한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을 깊게 생각해 보았다면, 우리의 성찰 분위기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 규범은 서로를 존경하라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 .…….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해 줄 뜻을 품으십시오. (로마 12, 9~17)
 
사랑이 없는 솔직은?
 
“남김없이 다 이야기한다”는 뜻을 가진 단어 파레시아(parrhesia)가 필요할 때가 있다.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1코린 13, 1~2, 4~6).
 
정중하게 말하는 방법
 
진리라는 미명하에 일어난 전쟁이 많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자라 우리는 계속해서 언어폭력을 행사한다.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우리의 말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그러나 바른 양심을 가지고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하십시오. (1베드 3, 15f)
 
칼처럼 베는 말과 치유하는 말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구약성경에서도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다. 많은 관련 구절 중에서 일부를 골라본다.
 
미련한 말을 하는 자는 멸망에 이른다. (10, 8) 말이 많은 데에는 허물이 있기 마련 입술을 조심하는 이는 사려 깊은 사람이다. (10, 19) 난도질하듯 함부로 지껄이는 자들도 있지만 지혜로운 이들의 혀는 아픔을 낫게 한다. (12, 18) 입을 조심하는 이는 제 목숨을 보존하지만 입술을 열어젖히는 자에게는 파멸이 온다. (13, 3)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불쾌한 말은 화를 돋운다. (15, 1)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혀는 생명의 나무지만 사악한 혀는 정신을 파탄시킨다. (15, 4) 혀에 죽음과 삶이 달려 있으니 혀를 사랑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는다. (18, 21) 우둔한 자에게 그 어리석음에 맞추어 대답하지 마라. 너도 그와 비슷해진다. (26, 4) (이상 잠언)
 
중상꾼으로 불리지 않도록 하고 네 혀로 올가미를 놓지 마라. (5, 14) 말 많은 사람과 겨루지 말고 그의 불 위에 장작을 쌓지 마라. (8, 3) 수다스러운 자는 자신의 성읍에서 두려움이 되고 조심성 없는 자는 자신의 말로 미움을 받으리라. (9, 18) 심판이 닥치기 전에 너 자신을 성찰하여라. (18, 20)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은 그들의 입에 있지만 지혜로운 이들의 입은 그들의 마음에 있다. 불경스러운 자가 자신의 적대자를 저주할 때 그것은 자기 자신을 저주하는 것이다. 비방하는 자는 자신을 더럽히고 이웃에게 미움을 받는다. (21, 26~28) 무식하고 상스러움에 네 입을 길들이지 마라. (23, 13) 상스러운 말을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은 평생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23, 15) (이상 집회서)
 
이와 같은 구절을 읽고 나면 우리는 늘 이렇게 답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부주의한 말에 대한 책임
 
말은 참으로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는 말은 그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을 드러낸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자기가 뱉은 단어 하나하나에 책임을 져야한다.
 
사실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선한 사람은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꺼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꺼낸다. 사람들은 자기가 지껄인 쓸데없는 말을 심판 날에 해명해야 할 것이다.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의롭다고 선고받기도 하고,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단죄받기도 할 것이다. (마태 12, 34~37).
 
 
예수님을 고발한 죄목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쉽게 단죄하려고 한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신성모독과 전통 파괴의 죄목으로, 또한 법을 어겼다는 이유 때문에, 심지어 마귀에게 홀렸다는 이유로 고발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의 말씀을 듣는다면 우리의 말이 어떻게 바뀌겠는가?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마태 7, 1~3, 21~23)
 
 
조용한 때만 들리는 하느님의 음성
 
우리 신자들이 하는 위험한 짓은 복음 말씀을 듣지 않고 수도 없이 많은, 쓸데없는 글을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침묵이 없다면 우리의 말은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그 말이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 교황님, 교회, 가톨릭 교리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말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침묵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안에서도 자기들이 본 죄악을 찾아내려 노력할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이 썩었다고 말하기 위하여 구체적 구실과 작은 결함, 어두운 면을 찾아 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견해가 맞다고 설득할 것이다. 우리는 쓸모없는 대화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복음말씀의 힘을 무디게 만든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히브 4, 12)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큰 파문을 던진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하겠는가? 복음의 가르침을 따를 용기가 있는가?

출처: Vatican News, 07 January 2020, 16:17,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church/news/2020-01/courage-christians-use-word-listening-word-go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