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구유 (2)
크리스마스를 맞는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한다. 거리의 모습이 그걸 입증한다. 그래, 들썩이고 흥청대는 길거리 모습이 성탄의 기쁨은 아니지 않은가? 함박눈 소복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성탄의 의미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우리의 마음이 변한 건 아닐까? 먹고 살기 힘든 판에 성탄이 온다 해서 신경 쓸 일이냐는 투정이 널리고 깔렸다. 자선 같은 배부른 소릴랑 집어치우라는 호령에 구세군의 종소리가 힘을 잃었다.
실직이 제공한 낙담, 실연이 퍼부은 아픔, 가난이 쥐어짠 실망, 미움이 제조한 분노가 들끓는다. 파괴된 가정, 각박한 이웃 간의 인심이 세상을 덮었다. 어지러운 정치판과 책임을 모르는 위정자들, 부도덕한 사업가들의 손에 뒤흔들리는 민초들의 삶이 처참하다.
그 세상으로 그분이 내려오신다. 복잡한 세상사에 무심한 목동들의 집을 찾아오신다. 환영인파도 꽃다발도 없는 곳, 마구간을 택하신다. 기쁨의 환성은 없어도 희망의 문이 열리고 있다.
구유를 꾸미는 구성품의 의미
교황은 성탄구유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구유의 배경은 어둠과 고요에 싸여있고 별이 빛나는 하늘입니다. 깜깜한 밤길을 걸었던 경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에도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가져다주고, 고통의 그림자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길을 밝혀줍니다."
풍경
교황은 서한에서 고대의 유적이나 건물이 있는 풍경에 관해 쓰고 있다. “이렇게 폐허로 변한 옛것들은 타락하는 인간상을 보여주고, 만물은 필연적으로 망가지고 부식하고 결국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변한다는 진리를 가시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좋은 경치를 배경으로 구유를 꾸미는 것은 예수님께서 치유하고 재건하기 위해 오셨고, 세상과 우리의 삶을 원래의 멋진 모습으로 복원시키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목동들
“구유에 있는 목동들에 관해 생각해 봅시다. 복잡한 세상사에 분주한 사람들과는 달리 목동들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핵심을 꿰뚫어 본 첫 번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본 핵심이 바로 구원의 선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에 오신 엄청난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겸손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었습니다. 사랑과 감사와 경외심으로 구세주를 만나기 위해 준비 중이던 목동들은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를 만나러 오는 하느님께 응답한 것입니다.”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가장 절실히 바라는 사람들과, 당신을 모시고자 청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면서도 강력한 방법으로 선언하셨습니다. 아무도 배제되거나 소외되어서는 안 되고, 더 인간적이고 형제적인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일상의 거룩함
“구유에는 복음서와 분명한 관련이 없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목동과 대장장이, 제빵사와 음악가, 물 주전자를 나르는 여인과 놀고 있는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구유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소소한 일상 안에 담겨 있는 영적인 거룩함을 드러냅니다. 평범한 일 속에서 얻는 기쁨이 평범하지 않은 방법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
교황은 성모 마리아와 요셉에 관해 이렇게 적고 있다.“당신의 아들을 바라보고 계시는 어머니 마리아는, 모든 방문객들에게 예수 아기를 보여주십니다. 성모님은 당신 혼자만 예수님을 차지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실천하도록 이끌어주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십니다. 성 요셉은 마리아 옆에서 예수아기와 성모님 모자를 보살핍니다. 요셉 성인은 언제나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신 수호자입니다.”
아기 예수
“우리가 아기 예수님을 구유에 모실 때 성탄의 역사가 재현됩니다. 불가능한 것 같지만 그것은 진실입니다. 하느님은 아기 예수로 태어나셨습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하느님은 당신의 지대한 사랑을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팔을 벌려 모든 사람들을 끌어안으시며 미소 짓습니다. 구유는 역사의 과정을 바꾼 유일무이하고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을 우리가 보고 체험하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삶과 일치하게 되는 과정을 묵상하게 해 줍니다.”
삼왕
“예수공현대축일이 다가오면 우리는 구유에 삼왕을 추가합니다. 그들의 존재는 복음을 전해야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상기시켜줍니다. 동방박사는 사람들에게 멀리 돌아서 그리스도께 갈 수 있다고 가르쳐 주고서, 자기들은 집에 돌아와 메시아를 만난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이것이 여러 나라에 복음이 전파된 효시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연결고리
“구유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우리 자녀들과 손주들에게도 똑같은 경험을 가지게 해야 할 의무를 상기시켜줍니다. 구유를 어떻게 꾸미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유가 우리의 삶에 전해주는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탄구유는 믿음을 이어가도록 연결해 주는 중요한 고리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단계에서, 예수님을 묵상하고,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가 그분과 함께 있음을 느끼고 믿도록 가르칩니다.”
출처: Vatican News, 01 December 2019, 16:01, 번역 장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