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eLuca12 2019. 11. 27. 22:23

6월 초, 비가 내리는 밤에 도착했다. 절기는 여름에 접어들었지만 비에 젖고 바람에 식은 공기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의 스산함이 느껴진다. 난생처음 밟은 땅이지만 고향에 온 듯한 설렘이 몹시 세찬 빗줄기에도 씻기지 않는다. 늘 마음에 두고 있던 곳을 이제야 왔다. 대륙에서 떨어진 영국은 여러 차례 왔으면서도 그리 넓지 않은 바다, ‘아일랜드해’를 건너 더블린에 오는데 이렇게 긴 세월이 필요했다.

 

이곳은 그 ‘아버지’의 땅이다. 내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그분이 나의 출생소식도 아버지께 알리셨다.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이 눈을 뜨고 나서, 가장 먼저 만난 일곱 번째 사람이 그 어른이다.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내게 세례를 주신 그 ‘아버지’에게서, 나는 처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셨다. 우리는 거의 매일 이른 아침에 만났다. 나는 그분이 제의 입는 일을 도와드렸고, 둘은 라틴어 미사경문을 계응(啓應)으로 주고받았다. 조금 어려워했던 것 말고는, 아버지와 똑같이 ‘아버지’를 존경했고, 그 ‘아버지’도 나를 친아들처럼 사랑하셨다. 그분은 내 영신의 아버지이고, 신학교에 보내주신 그 ‘아버지’이기도 하다.

 

내 후각이 ‘아버지’의 체취를 느낀다. 고사리 작은 손이 그분의 털북숭이 손에 빨려 들어간다. 유난히 심하게 당신 나라 억양을 섞은 어른의 말씀이 들려온다. “요셉, 수고했다. 빨리 준비하고 학교 가거라.” 육십년의 세월이 한 곳에 응집되고, 종이처럼 펴졌던 둥근 지구가 동쪽과 서쪽 끝이 맞닿도록 접혀진다. 가슴이 먹먹하다. 콧속에서 시작한 찌릿한 기운이 눈까지 차오른다. 뻐근해진 목의 통증이 경련으로 마비된 힘줄을 타고 가슴까지 내려온다. 빗물과 섞여 분간하기 어려운 액체가 뺨과 콧잔등 사이로 흘러내린다. “네 신부님, 저 여기에 왔습니다.”

 

어제 저녁에 로마로 돌아오신 교황님은 고단도 하실 텐데, 오늘도 매주 수요일에 있는 일반알현을 거르지 않았다. 이번엔 교리교육 대신 아시아 사목방문 보고를 하셨다. 그분이 오늘 기도하고 싶었던 마음을 나는 특별히 이해한다. 동남아, 서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우리의 사목적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꾸르실료운동의 경험이 일깨워준 깨달음이다. 교황님의 아시아 두 나라 방문이, 며칠간 내 마음을 흔들어 ‘아버지’께 대한 그리움을 깨워서 불러냈다.

 

베드로 광장에서 주간 일반알현을 받는 교황

교황은 귀국 다음날 가진 일반알현에서 태국과 일본 사목방문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어제 태국과 일본의 사목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두 나라의 행정당국자들과 동료 주교님들, 그리고 특별히 양국 국민들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태국에서는 불교의 최고지도자인 승왕을 만나 종교 간의 존중과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습니다. 또한 세인트 루이스 병원을 방문하여 병자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지역교회의 지원을 당부했습니다. 태국에서 가진 인상적인 행사는 사제, 남녀 수도자, 주교들과의 만남과, 마지막으로 젊은이들과 함께 했던 미사였습니다. 목요일과, 금요일에 봉헌된 두 번의 미사를 통해 태국 국민들에게서 복음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일본 사목방문의 표어는 ‘모든 생명을 보호합시다.’였습니다. 이는 원자폭탄과 최근에 일어난 자연재해로 인해 엄청난 재난을 겪은 지역 주민들의 생존문제와 관련된 주제입니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가서 생존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만나 함께 기도하면서 핵무기 폐지를 다시 한 번 호소했습니다. 일본 젊은이들과도 만나 두려워하지 말고 미래를 헤쳐 나가라고 격려했습니다. 또한 열심히 기도하고 이웃을 섬기면서 하느님의 사랑에 마음을 활짝 열라고 당부했습니다.”

 

“태국과 일본 국민들을 하느님 사랑의 섭리에 맡깁니다. 그들을 축복하시어 번영과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출처: Vatican News, 27 November 2019, 09:45,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11/pope-francis-general-audience-english-summary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