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죽음을 이긴 생명의 승리

MonteLuca12 2019. 11. 24. 22:17

잊고 사는 것이 많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잊어버린 것의 자리를 다른 놈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思考와 기억의 용량이 물리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시시콜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억을 악착같이 붙들고 있는 내 모습에 놀라, 미세한 발작 같은 어깨의 경련이 일어날 때마다, 그 생각이 틀림없었다고 믿곤 한다. 옛것이 잊혀져가는 시대를 산다. 오늘이 쉬이 과거로 바뀌어, 그 둘을 잡아맨 고리가 달구지 바퀴처럼 얽혀서 덜컹대며 세월 위를 굴러간다.

 

말초적 자극에는 쉽게 끌리고, 영속적 가치에는 어김없이 싫증을 낸다. 성체 앞의 짧은 조배는 생색내고 싶은 눈치로 시간을 채우고, 부어라 마셔라 술자리 상머리의 신변잡담은 시간가는 줄 모른다. 신앙생활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겠다는 간절함의 변형이고, 화려한 봉사는 사회적 발판을 만들기 위한 얄팍한 처세술의 변장이다. 무료하고 단조로운 삶에 활력을 불어 넣기엔 교회만 한 것이 없고, 여러모로 필요한 인간관계 구축에는 단체활동 이상 없다. 숭고나 겸손은 발붙일 곳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다.

 

늘 같은 자리에서 만나 뵙는 교황님 기사가, 이웃나라에 와 계신 것만으로 퍽 친근한 느낌을 달고 다가온다. 어젯밤 도착하신 어르신의 행보가 장난이 아니다. 아침 7시 도쿄를 출발해 나가사키에 가서 원폭공원을 들르고, 순교성지에서 미사를 집전한 후, 히로시마를 거쳐 밤 10시에 도쿄로 돌아오는 일정을 소화하셨다. 메시지, 인사, 강론 등 여러 형태의 말씀이 전해져온다. 그 중에서 순교성지 방문 중에 하신 인사말씀을 골라 옮겼다.

 

그곳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선교사들과 순교성인들의 이야기가, 결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물이 아니라는 말씀이 축 늘어져 흐리멍덩한 뇌혈관을 쥐어짠다. 이 땅의 신앙선조들이 흘리신 피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쥐꼬리만큼이라도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가? 걱정하시는 교황님의 한탄이 작은 바다 건너에서 들리고 있다. 쓸데없는 것을 밀어내고 어르신의 말씀을 담으려 머릿속 자리를 정리한다.

 

나가사키의 순교지를 찾은 교황

우리의 믿음을 확고하게 하는 순교자들의 증거

교황은 나가사키의 순교기념비를 방문하여 일본의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이 생생히 살아있는 곳이라고 말하면서, 일본에서도 새로운 복음화의 물결이 일기를 염원했다.

 

교황은 나가사키 순교기념비에 모인 사람들에게 본인도 순례자로서 기도했으며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의 굳은 신앙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성 바오로 미키를 포함하여 이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름을 되새기며, 이 성지가 순교지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여기에 새겨져 있는 것은 죽음을 이긴 생명의 승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의 전임 교황인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이곳이 단지 ‘순교자들의 산’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참 행복을 가르쳐주신 ‘산상수훈의 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박해를 이긴 복음의 빛

 

“복음의 빛이 박해와 칼을 이겨낸 사랑으로 밝게 빛났습니다.”

 

“이 성지에 서있는 비석은 부활의 기념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반대편의 온갖 입증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전하는 마지막 말씀은 우리가 죽음이 아니라 생명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의 증거

 

“순교자들의 증거는 우리의 믿음을 확고하게 만들고,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직의 사명에 전념하고 헌신하도록 쇄신시켜 줍니다. 그분들의 증거는 우리가 모든 이들에게, 특별히 가장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매일같이 묵묵히 순교자적 희생을 바침으로써 생명을 수호하는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게 이끌어 줄 것입니다.”

 

숭고함 앞에서

 

“저는 이곳에서 순교하신 성인성녀들에게 공경을 드리기 위해 여기 순교기념비에 왔습니다. 그 옛날 선교를 위해 이곳까지 오셨던 선조들과, 이곳의 순교성인들의 숭고한 믿음 앞에서 엄청난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보잘것없는 신앙의 후예이며, 지구 반대편에서 온 어린 예수회원일 뿐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유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기억

 

“순교자들의 희생은 과거의 영광스러운 유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기억입니다. 그것은 사도직 활동을 북돋우는 영감으로 이 나라의 복음화에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믿음 때문에 순교자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21세기, 현대적 순교의 증거자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참 행복을 향해 가는 길을 용감하게 따라나서라는 외침입니다.”

출처: Vatican News, 24 November 2019, 03:13, 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11/pope-the-witness-of-the-martyrs-confirms-us-in-faith.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