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랑스런 시선
다음달 17일에 생신을 맞으실 교황님의 연세는 만 83세에 20일 정도가 모자라다. 때론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 왜 그리 힘든 해외방문을 계속하시는지 순수하지 않은 의심을 하기도 했다. 교황청이라고 해서 어찌 조용하고 협조적이며 애덕의 정신으로만 살고 일하겠는가? 옛 노인들이 늘 말씀하셨다. 하느님 계신 곳 가까이에 가장 큰 마귀가 산다고…….
이분은 당신의 교황명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으로 정하시면서 성인께 대한 존경과 사랑을 드러내셨다. 그분의 청빈과 겸손을 닮고, 그리스도를 완전히 본받으려 노력했던 성인처럼 사시겠다는 결의를 이 이름에 담았다. 또 한 분이 있다. 적어도 내가 읽는 교황님의 말씀 속에는 바오로 사도가 많이 등장하신다. 이 어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현장에 내려와 이루어내신 엄청난 구원의 事變을,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온 세상에 전파하는 사명완수의 선봉장이셨다. 그리고 사도가 겪으신 경천동지할 사건인 ‘회심’은, 우리 가슴에 새겨진 신앙의 중심에 서있다.
교황 즉위 80개월 만에 32번째 사목방문이라니, 참으로 놀랍다. 당신은 그걸 하느님의 은총이 이끌어주시는, 크게 힘들지 않은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세상 모두가 이 노인의 목장이고, 늙은 목동은 양 무리에서 풍겨나는 각기 다른 냄새를 맡고 싶어 하신다. 마냥 인자할 것 같은 할아버지가 치시는 야단도 있다. 문밖으로 뛰어나가지 못하고 심심풀이에 고심하는 교회의 모습을 향해 던지는 걱정이다.
경제전쟁과 핵무기의 위협, 살육과 인신매매, 권력다툼과 이념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억울한 희생을 강요당하는 전 세계 수억 민초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에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결국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처방은 ‘사랑’ 뿐이라는 깨달음이 눈을 뜬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다시 새긴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1코린 13, 13)
어젯밤에 올라온 Vatican News의 사설을 옮겨 싣는다.
죄인과 악인들이 들끓는 속에서 예수님은 사도들을 보았다
“복음은 어떻게 선포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만난 모든 이들에게 사랑의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복음선포를 시작하셨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눈에 죄인, 신성 모독자, 세리, 악행을 일삼는 자, 심지어 배신자들만 보일 때, 예수님은 사도들을 찾아내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선포하도록 불러주시는 그 분의 시선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 시선은 상대를 회심시키고 최선을 다하도록 마음을 움직입니다.” 전 세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입증된 ‘사람이 되신 말씀’이 선교를 이해하는 열쇠라는 점을 역설한다. 교황이 태국방문 사흘째이며 마지막 날, 성직자, 수도자, 신학생, 교리교사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선교사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한 말이다. 이 모임은 방콕 근교에 소재한 타캄 마을의 수도원 경내, 성 베드로 성당에서 있었다.
이 행사가 끝나고 잠시 후에 교황은, 순교 복자 니콜라스 분커드 킷밤룽 신부 기념성당에서 태국 주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교황은 주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의 시선은 모든 종류의 예정론과 운명론, 각종 규범들을 깨부수는 것입니다. 선교는, 모든 해야 할 일과 수행해야 할 사업에 우선하는 사명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눈길을 터득하고 그분의 냄새를 풍기는 것을 익혀야 합니다. 양은 목자가 찾기를 포기할 때 잃어버리는 것이지 그 전에는 절대로 잃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자기 자식에 대하여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관심과 배려를 요구합니다.”
“이 긍정적인 시선은 비그리스도교적 문화에 그리스도 신앙을 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선교의 전형이며 다른 민족의 문화와 전통 속의 가치 있는 모든 것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게 될 것입니다.”
교황은 만남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세상에 보내실 때, 사람들이 이미 많이 짊어진 것 이상으로, 그들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무거운 짐을 지우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기쁨을 나누어야 하며 아름답고 놀라운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황폐한 땅에 끊임없이 복음의 씨앗을 심어나가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방법과, 주님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를 깨우고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하십시오. 복음의 낯설은 껍질을 벗겨내서 이 땅에 뿌리내린 토속적 가락에 맞춰 노래하게 하고, 우리 마음에 불을 지피고 있는 그런 아름다움과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형제자매들의 가슴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출처: Vatican News, 19 November 2019, 13:01, 번역 장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