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재정
최근 경제에 관해 부쩍 늘어난 국민들의 관심이 예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지난 2년여 동안 새로운 경제정책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또 다른 느낌으로 체험하고 있다. 사회과학의 특징을 감안하면, 이론과 실제가 같지 않은 것이 이상하지 않을 때가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연스럽게 느끼기도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지는 예측하기가 난감하다.
경제학을 배우면서 아주 의아하면서도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표’가 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이론이었다.
國安과 民福의 가치가 정치적 利害에 자리를 내줄 수 있고, 때로는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국가적 위기관리의 의무도 무시될 수 있다는 현상적 관찰이, 학문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위정자들의 ‘섬김 정신’은 가냘프게 모양만 갖추고, 진영의 압력이나 무리의 편향된 이익과 명예에 매몰된 억지가 반복된다.
지난 월요일 발간된 「최후의 심판 (Il Giudizio Universale)」이란 저서가 일으킨 혼란을, 영국 일간 「더 타임즈」를 비롯한 외신이 세계에 전하면서 불을 붙였다. 바티칸의 재정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어 파산이나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아졌다는 주장이다. 교황청은 발빠르게 답을 냈다. 비판의 한계를 넘어서는 허구적 고발이 일으킬 파문이 걱정되지만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루카 12, 42)인 교회에 대한 신뢰를 다지게 만든다.
세상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경제와 경영’을, 교회가 가볍게 여기면 안된다는 주의 환기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초대교회의 모습에서도 공명정대하고 효율적인 공동체의 관리기법과 운영시스템을 찾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사회가 복잡하고 다단해질수록 관리해야 할 범위가 넓어지고, 요구되는 전문성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바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노력이며 교회가 가진 청지기의 소명이 아닌가 싶다.
교회와 돈,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는 생각이 앞선다. 이와 함께 돈의 가치에 무감각한 교회의 모습도 편하지 않다. 배부른 부자의 무관심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문제의 책이 지적하는 교황청 재정악화의 이유 중 하나가 봉헌금의 감소다. 이 분석이 적잖게 관심을 끄는 것은 근자에 와서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는 우리의 실상 때문이리라. 언제까지 이렇게 넉넉할지 모르니, 장기적 계획을 세워 대비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돈이 부족한 교회의 장래가 불안한 것이 아니라, 돈에 길들여진 미래의 교회가 걱정되는 것이다.
교황청의 재정위험은 없다
사도좌재산관리처 처장은, 교황청이 재정적 파산 직전에 있다는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최근 출간된 책에서 제기한 내용을 반박한 것이다.
"교황청은 파산이나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전혀 없습니다. 경비 지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뿐인데, 그것은 우리가 늘 하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숫자로 증명하도록 하겠습니다."교황청 사도좌재산관리처(APSA) 처장 눈치오 갈란티노 주교는 화요일 교황청 기관지인 아베니레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청의 입장을 밝혔다.
예산 균형
갈란티노 주교는 먼저 APSA가 관리하는 자산은 1929년 라테란 조약(주1)의 부속협약인 재정협의의 결과로 정해진 것임을 설명했다. "교황청의 행정업무는 일반 가정의 살림살이나 전세계 국가들이 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시점에 누가 어떤 지출을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고, 수입을 고려하여 그에 맞게 비용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갈란티노 주교는 APSA의 예산집행의 부정적인 결과에 관한 주장을 부인했다. 이런 주장의 내용은 교황청의 자산관리가 규칙을 무시하고 상명하복의 조직체계에 따라 이루어짐으로써 유령계좌를 운영하거나,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조직적인 내부저항으로 인해 위기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처장 주교는 이렇게 설명한다. "실제로 2018년 APSA의 일반재정회계는 2천 2백만 유로의 이익으로 마감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재정적 손실은 오로지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과 병원의 종업원을 지원하기 위하여 집행된 특별예산 부문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암호화된 계정은 없다
갈란티노 주교는 또한 APSA가 계정이나 연결회계 시스템을 암호화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저는 반복해서 밝혀 드립니다. APSA에는 어떤 비밀계정이나 암호화된 계정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이를 확인하는 것을 막지 않겠습니다. APSA에는 교황청의 부서(dicastery) 및 관련기관이나 행정기구에 소속된 사람과 법인의 계정이 있을 뿐, 다른 것은 일체 없습니다. 세금이나 공채에 의존하지 않는 나라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인 것처럼, 우리의 수입원은 자체 자원을 투자하여 소득을 창출하거나, 신자들의 봉헌금에 의존하는 것 외에 다른 소득원이 없습니다. 베드로 성금(Peter's Pence)(주2)조차도 봉헌금으로 조달됩니다. 교회가 아무 것도 갖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가 하면, 교회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임금을 지불하고, 넉넉하지 못한 이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교회가 베풀어야 한다는 요구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꼭 그렇게 될 리는 만무한 일입니다. 인건비 지급이나 물품구매를 위해서 우리는 아주 치밀한 지출검토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채무불이행에 대한 가설이 현실화될 것이란 염려는 기우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나누고 있는 이야기는 비용지출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는 경제주체의 일반적 경우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도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APSA가 관리하는 자산
갈란티노 주교는 APSA가 관리하는 자산에 관한 정보를 공개한다. "2,400개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데 주로 로마와 카스텔 간돌포(역자주: 교황의 하계 별장이 있는 곳)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상점과 사무실이 600개 정도 됩니다. 이 부동산들은 수익을 창출하지 않는 것으로, 호텔식 아파트이거나 교황청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오12세 광장에 있는 건물을 예로 들어 이야기해 봅시다. 실제로 어느정도 가치가 있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가 초호화 호텔로 개조하는 것일 겁니다. 그렇게 했다 해도 교황청 사무실로 쓴다면 재산적 가치는 전무합니다. 실제로 현재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파트의 약 60%는 도움이 필요한 직원들에게, 할인된 임대료를 받고 임대되는 전형적인 공공지원 주택입니다. 만일 대기업이 이렇게 한다면 직원들을 잘 보살피는 회사라고 칭찬받을 것입니다. 교황청이 하니까 자산을 관리할 줄 모르는 무능하고 형편없는 사람들로 질책을 받고 있습니다."
교황청은 교황의 뜻에 따라 업무를 수행
APSA 처장 갈란티노 주교는 이런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교황청과 교황님 사이에 적대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저널리즘의 상투적인 방식입니다. 우리 모두는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황님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실천에 옮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 여러 집필들은 ‘다빈치 코드’와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실제와는 거리가 먼 완전히 허구적인 내용을 쓰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주 1] Lateran Pact (라테란 조약): 1929년 2월 11일 바티칸시의 라테란궁에서 조인된 교황청과 이탈리아 왕국 사이의 조약과 재정적 협의 및 종교협약을 말한다. 1870년 이탈리아에 의해 교황령이 장악되자 교황들은 잇달아 그것을 부당한 것으로 규정하고 항의하였으나 이탈리아 정부 또한 한 치도 양보함이 없이 이에 팽팽히 맞섰다. 그러던 중 1922년, 교황 비오(Pius) 11세는 교황위에 오르자 즉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사를 표시했고, 때마침 파시즘의 승리로 부상한 무솔리니(Mussolini)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 후 교회법을 개정시키려는 정부측의 움직임에 대해 교황은 교황청과 이탈리아 정부 간의 협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천명하였으며, 이로써 교황 주재 하의 이탈리아와 교황청 사이의 회합이 1929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출처: 가톨릭사전)
[주 2] 베드로 성금: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교황 주일에 봉헌하는 특별 헌금. 영국에서 시작된 관행으로 본래 기부금 또는 세금의 성격을 띠었으나 1534년에 끝났다. 비오 9세 때 교황령 붕괴 이후 재정난 때문에 이 헌금을 다시 인정하고, 라테라노 조약 이후 지역 교회의 자발적인 헌금으로 이어졌다는 역사적인 배경에 따라 ‘베드로 성금’이라고 부른다. (출처: 가톨릭사전)
출처: Vatican News, 22 October 2019, 11:25, 번역 장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