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윤리
처음엔 알파고가 이기기를 바랐다. 약자를 응원하는 동정심에서 우러나온 마음이다. 판이 거듭되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이렇게 쉽게 편을 바꾼 적이 없다. 선거에서도 평생을 변함없이 한편에 투표했고, 하다 못해 야구도 응원팀을 갈아탄 적이 없다. 끊임없이 성능개선을 이어오며, 기대 이상의 편의를 제공해 준 디지털 기술에 품었던 고마움이, 바둑선수 알파고로 인해 섬뜩한 느낌으로 뒤집힌다.
나는 전문가를 뺀 동세대의 사람들 중에서 컴퓨터와 가장 가깝게 살아온 사람임을 자부한다. 원고지에 글을 쓰고 고치는 일에 누구보다 익숙했던 내가, 문장이나 문단을 통째로 이리저리 잘라 붙이는 기능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수요예측분석을 위해 다변수회귀분석을 하느라 책상 전체를 뒤덮고도 모자랐던 「훌스캡」(foolscap)紙는 「스프레드쉬트」의 가장 기본적 기능에 밀려 퇴출당했다. 데이터를 관리해 주는 프로그램에 놀란 기분은 같은 일을 수작업으로 해 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경천동지에 견줄 만하다고 늘어놓는 이런 자랑도, 참으로 부끄럽고 유치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우주나 외계를 논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모두 부지불식 간에 지구를 덮고, 실체를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세상을 살고 있다. 時空의 제약을 받지 않는 그 세상의 지배자는, 빠른 속도로 영역의 경계를 허물어 간다. 필시 몽고 기마군대의 질주를 베껴 익힌 전술을 장착한 듯하다. 그 세상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 자들의 통치 하에 종속된 인류가 몇 할에 이르는지 계측이 불가능하다. 어쨌거나 거부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오늘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문명의 利器임을 부인할 수 없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교황님이 찌르시는 정곡을 보고 흠칫 놀란다. 우리나라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하시는 말씀 같다. 디지털기술이 제공하는 편익은 공동선과 인간 존엄성의 보호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왜곡과 위장을 획책하는 자들의 무기가 되는 것을 막아내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발달하는 기술의 윤리적 도전
교황은 "디지털 시대의 공동선"이라는 주제로 「교황청 문화평의회」와 「교황청 인간발전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회의 참석자들을 접견했다.
알현을 시작하면서 「교황청 문화평의회」 의장인 라바시 추기경은 교황에 대한 인사를 통해, 디지털문화 분야에서 진행중인 과학적 연구의 복잡한 특성이 교황청의 두 기구가 힘을 모으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부터 ‘트랜스휴머니즘’까지추기경은 이번 회의에서 논의된 주제를 설명했다. 디지털시스템에서 자율살상무기까지, 인공지능에서 블록체인까지, 로봇화에서 트랜스휴머니즘㈜까지, 디지털문화 전반에 걸친 주제를 다루었다고 밝히며, 이번 회의 전반을 이끌어 준 성찰이 공동선의 가치와 인간 존엄성의 보호를 상기시켜 주었다고 말한다.
(역자 주)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지적, 문화적 운동이다.
교황은 기술분야, 특히 인공지능을 다루는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놀랍다고 답하면서, 기술의 발달이 인간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점점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기술과 윤리
교황은 자신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언급하면서, 인류가 기술의 발달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많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편익의 가치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교황은 ‘기술관료적 사조’가 가져올 폐해를 걱정한다. 통제가 불가능하고 무제한적인 기술의 발달은 인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를 막아내기 위하여 만남의 문화와 다양한 학문분야의 공조를 굳건하게 다져 나갈 것을 주문했다.
공동선교황은 이번 회의에서 폭넓고 유익한 대화를 나눈 것을 치하했다. 참가자 모두가 서로 배우도록 도와주고, 미리 준비된 방법론에 갇혀 마음의 문을 닫지 않도록 배려한 것을 이 회의의 특징으로 평가하고 칭찬한 것이다.
교황은 이번 회의의 목적에 대한 언급에서 이론적이고 실질적인 도덕률, 둘 다를 정확하게 진술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번에 다뤄진 윤리적 문제들이 ‘공동선’의 맥락에서 정확하게 논의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로봇 공학교황은 공장의 로봇화에 관한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영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힘들고 반복적인 유형의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효과가 있는 반면, 수천명의 일자리를 빼앗아 그들의 존엄성을 위태롭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교황은 또한 인공지능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AI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지만, 극단에 치우친 의견과 거짓정보를 유포함으로써 수백만명의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국민들의 공존체계를 송두리째 위험에 빠트리는 역효과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개인적 善益교황은 소위 기술의 발달이 ‘공동선’의 적이 된다면 불행한 퇴보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로 가장 강력한 법규에 의해 통제를 받는 야만적인 형태의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공동선은 인간 각자의 개인적 善益과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세상교황은 기술의 발달이, 공동선과 '도덕을 중시하는 자유', 책임감과 형제애에 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일 때에만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럴 경우에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모든 피조물 간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기술의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출처: Vatican News, 27 September 2019, 12:42, 번역 장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