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묵상

첫 순교자

MonteLuca12 2019. 9. 26. 23:19

故事成語가 고생하고 있다. 국적이 분명하지 않고, 품격도 부족한 新造成語가 거리낌없이 전파를 탄다. 여하튼 네 탓 공방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의 허리춤엔 거짓과 파렴치가 가득 담겼다. 예수님의 질책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각자가 정해 놓은 기준을 들이대며 공정과 정의를 외친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 7, 3)

 

엄청나게 많은 정보 속에서, 너무 다양한 주장을 듣는 머리가 혼미하다. 겹치고 쌓이면,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이 흐려진다. 선과 악이 들러붙어 뒹굴고, 적군과 아군이 손을 잡고 춤을 춘다. 빛과 어둠의 경계가 모호하고, 천사와 마귀에 관한 이단적 궤변이 가난과 고통으로 졸아든 가슴을 뚫는다. 이쯤에서 주님이 불을 들고 나타나시면 속이 확 풀릴 것 같다. 어지러운 세상을 불로 정화하시겠다는 예수님 말씀의 의미를 해설없이 알아듣는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루카 12, 49)

 

초기교회 안에 만연했던 불화의 모습을 교황님이 짚으신다. 중상모략으로 인해 고발당하고 순교하신 제1호 부제님, 스테파노 성인의 모습이 마음을 짠하게 한다. 이 이야기가 더욱 슬프게 들리는 것은 그분만의 이야기 같지 않은 느낌 때문이리라.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사도 6,8) 시쳇말로 튀는 부제님이 이 자들의 눈에는 가시 같은 존재였던가 보다. 그 뿐일까? 나대지 않고 조용히, 헌신적으로 교회 봉사를 해오신 분이 터놓는 이야기가 충격적이다. 우리는 왜, 하필 교회 안에서 상처받고 아파하는 것일까? 교황님의 가르침에서 위안을 찾는다.

 

교황의 일반알현

성장과 결실을 보장하는 순교자

교황은 일반알현에서 사도행전에 관한 교리교육을 이어갔다. 이번 주에는 사도들이 처음으로 부제 제도를 만든 것과, 그 중 한 사람인 성 스테파노가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된 경위를 설명했다.

성 루카가 사도행전에서 지적한 것처럼, 초기교회부터 교회는 항상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말로 교육은 시작되었다. 이 최초의 공동체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믿음의 공동체가 되었고, 그로 인해 깨지기 쉽고 불안정한 균형 상태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안에 잡초가 자라게 되었는데 공동체를 파괴하는 최악의 잡초는 '중상모략'이라고 말한다.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초대교회 공동체가 과부를 무시하는데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도 볼 수 있다. (사도 6, 1)


'말씀 봉사'와 '식탁 봉사'의 균형

"초기교회는 다양한 책무를 분담하면서 교회를 조용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 어려운 숙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은 복음선포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가장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도들은 공동체 안에서 핵심적인 사람들을 뽑았습니다. 그들은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 명으로, 공동체의 봉사와 자선에 관련된 ‘식탁 봉사’를 책임지는 부제가 된 것입니다. 부제는 사제와 다른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 봉사의 수호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부제를 만듦으로써 ‘말씀 봉사’와 식탁 봉사’ 간의 조화를 도모할 수 있었고, 이는 교회가 성장하는 누룩이 되었습니다."


스테파노는 중상모략의 피해자

“일곱 부제 중에서 스테파노와 필리포스는 독특한 모습으로 인해 다른 부제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스테파노는 역동적이고 담대한(parresia)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지만 그가 하는 말로 인해 극도로 완강한 저항에 부딪힙니다. 반대편 사람들은 스테파노를 흠집내기 위한 수단으로 중상모략과 거짓증언을 일삼기 시작합니다. 중상모략은 사람을 죽이는 ‘악마의 암’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명예를 파괴하려는 나쁜 욕구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중상모략은 교회의 구석구석을 빼놓지 않고 공격하여 심각한 상처를 입힙니다. 사람들은 하찮은 호기심이나 자기의 단점을 감추기 위하여 누군가를 비방하는데 적극 동조하는 그릇된 경우를 흔히 봅니다. 스테파노 부제는 거짓 내용으로 중상모략하는 사람들에 의해 고발당해 최고의회에 끌려나갔습니다. 예수님을 고발한 자들이 한 짓이나 모든 순교자들이 당했을 것 같은 고발과 같은 모양입니다. 스테파노는 자신의 변호에서 그리스도께로 집결되는 신성한 역사를 재해석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약속의 역사' 전제를 풀어주는 열쇠라고 하겠습니다. 흘러 넘치도록 풍성한 하느님의 선물을 받은 스테파노는 예언자들과 그리스도를 위선자로 몰아세우는 처사를 용감하게 비난합니다. 자신을 고발한 자들에 대하여 고상한 말로 응대하기 보다는 대담하게 반역자와 살인자라고 단정합니다.”


순교

“이런 중상모략은 청중의 난폭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스테파노는 돌로 쳐죽이는 유죄판결을 받고 말았습니다. 스테파노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았고, 자신을 구해 줄 법률적인 허점을 찾거나 도와줄 사람에게 호소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스테파노는 자신의 삶을 주님의 손에 맡겨 드리면서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살인자를 용서했습니다.”

교황은 스테파노의 말에 주의를 집중하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아름다운 연설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에 우리의 삶을 맡겨드리고,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이라는 것을 순교자들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우리 믿음의 깊이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교회 안에는 순교자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초대교회 보다 지금의 순교자가 더 많이 있고, 또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교회는 순교자들의 피로써 경작됩니다. 그 피는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하느님의 백성에게 성장과 결실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이란 ‘거룩한 사람’이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인간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이들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묵시 7, 14b)”

교황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할 것을 당부하면서 교리교육을 마무리했다.

“일상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믿음의 생활 속에서 복음을 따르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순교자적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온전히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갈 수 있도록 영감을 주시기를 순교자들께 청합시다.”

출처: Vatican News, 25 September 2019, 13:47번역 장주영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09/pope-francis-general-audience-acts-deacons-stephen-martyrdom.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