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술
영어에 ‘백색 거짓말’(white lie)이라는 표현이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선의의 거짓말’은 존재했었나 보다. 이를 활용한 의학용어 ‘플라세보 효과’는 심리적 치유를 위하여 환자에게 가짜 약제를 처방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의 어원은 라틴어 ‘플라체오‘(placeo)로 “마음에 들다”, “즐겁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견 사랑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필요악처럼 보인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을 ‘경축 이동’하여 드리는 주일미사 강론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순교였다. ‘백색 순교’라는 뻔한 답을 예상하고 있던 내 귀에 들려오는 것은 뜻밖의 말씀이었다. “오늘날의 순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공감한다. 진실 보다는 거짓을 말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싶을 정도로, 감추고 바꾸는 언어습관이 몸에 배인 것을 깨닫는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탈을 쓴 위장기술에 숙련되어 있고, 탁월한 변장으로 상대를 속이는 사기수법에 길들여져 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거짓말을 만들어낸 시발점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는 분석결과를 억지로 끌어내어 위안을 삼는다. 지나친 집착과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그 못된 허물은, 상처만 남기고 말았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한 것임에 틀림없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자. 욕심과 집착을 빼면 선하고 예쁜 마음만 남을 것 아니겠나?
대한민국을 휩쓸며 인구에 회자되는 단어가 ‘거짓말’이다. 숱한 말과 대화 속에 거짓과 조롱, 미움과 비판이 가득하다. 진정한 말과 대화란 어떤 것일까? 교황님은 ‘대화’라는 인간의 기본적 의사소통에 관한 가르침을 주신다.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대화의 기술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의 증인
교황은 「홍보를 위한 교황청 부서」(Dicastery for Communication)㈜의 총회에 참석하여 연설하면서 대화 중에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예를 열거했다.
(역자 주) 종전의 ‘교황청 홍보처’가 홍보부로 승격되면서 2018년 6월 23일 부로 “홍보를 위한 교황청 부서(Dicastery for Communication)”로 명칭이 변경되었다.의사소통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교황은, 월요일 아침 바티칸에서 전 세계에 교황의 동정과 메시지를 전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조차 놀랄 만한 대화기술에 관해 예를 들어가며 연설했다.
마음으로 하는 대화교황은 농담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실제로 세 쪽짜리 밖에 안되는 강론을 일곱 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늘려서 하면 듣는 이들이 모두 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황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격의 없이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이유라고 밝힌다.
남김 없는 대화교황은 대화에 있어서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태도는 우리와 대화하시는 하느님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진정한 의사소통은 마치 용광로에 녹일 쇠를 넣는 것처럼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자기 마음 속의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인적인 의사소통대화는 진실하고 참되고 적절해야 하며,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교황은 강조한다. “정신과 마음, 머리와 손, 모두를 사용하여 대화해야 합니다. 의사소통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개종시키려 하면 안된다교황은 상대를 개종시키려 하거나 강제로 마음을 돌리려는 의도를 가진 상업적인 방식의 의사소통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베네딕토16세 명예교황의 말을 인용한다. “베네딕토16세 교황님은 교회가 개종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증거함으로써 성장해 왔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증언에 기초한 대화“진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여러분의 삶으로 증거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 된다는 것은 증인이 되고 순교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항상 복음을 전하십시오. 필요할 때는 말로 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것은 증거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순교자의 교회입니다.”
체념하지 마십시오교황은 체념하고 싶은 유혹에 유의하라고 경고하며, 체념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체념은 이교도들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속성’에 빠질 위험에 대하여 당신 제자들에게 주의를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소금이나 누룩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상, 보잘것없는 작은 교회공동체란 점을 괘념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명사를 사용하는 대화교황은 대화할 때에 형용사보다는 명사를 사용하라고 가르쳐 준다. “명사는 사람과 사물을 분명하게 식별하도록 해 줍니다. 형용사는 사람의 외양을 표현하지만, 명사는 ‘사람의 실체’를 말해 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대화는 이렇게 실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대화는 아름답게“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모습은 꾸밈없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합니다. 로코코 양식의 건축물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같은 것이 아니라, 명사를 사용하는 표현, 삶으로 증거하는 의사소통, 인격적으로 온전하게 몰입하는 대화 속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대화교황은 준비된 원고를 벗어나 즉흥적인 이야기로 담화를 마무리한다. “훌륭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사도행전과 초대교회 공동체의 전승을 다시 읽어 순교자와 사도들의 언어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기쁨을 전하십시오.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출처: Vatican News, 23 September 2019, 12:30, 번역 장주영